16일 한국여성의전화는 성명에서 “우리 사회의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국가가 용납하지 않음을 명확히 하라. ‘국가가 죽였다’는 외침에 책임을 다하라”라고 요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국가가 죽였다”
여성단체들이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은 여성폭력 근절 책임이 있는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16일 한국여성의전화는 성명에서 정부 등을 향해 “우리 사회의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국가가 용납하지 않음을 명확히 하라. ‘국가가 죽였다’는 외침에 책임을 다하라”라고 요구했다.
성명에서 단체는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과 경찰의 신변보호조치 중단 등이 여성폭력 대응 실패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여성폭력 대응을 위해 구축한 기존 법·제도로 가능했던 여러 조치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적체계에 대한 불신만 더욱 높였다”고 했다. 이와 함께 반의사불벌 조항, 제한적인 보호조치 등 한계가 분명한 스토킹 처벌법의 개정과 피해자보호법 제정 논의가 더디다고 질타했다.
단체는 정부 등의 여성폭력 범죄에 대한 안일한 인식이 여성의 불안을 가중한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성명에서 “국가가 여성폭력 범죄에 제대로 된 문제의식도 전문성도 없다는 현실을 여성들은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고 밝혔다. 19살 성인 여성 7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1 여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폭력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응답자 비율은 57.8%로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비율(16.3%)보다 3배 높았다.
단체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5일 저녁 사건이 발생한 신당역을 찾아 한 발언을 지적하며 정부의 책임을 촉구했다. 단체는 성명에서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한 장관의 발언은 틀렸다. 법무부 장관이라는 직책은 국가가 지키지 못한 국민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분골쇄신의 태도로 대책을 마련, 정착시켜야 하는 자리다”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오전 “스토킹 방지법을 보완하고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단체는 이에 대해 “성난 여론을 잠재우려는 임시방편이 아님을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명에서 “여성폭력과 이를 용인하는 구조적 요인을 총체적으로 시정하지 않을 때 여성의 삶과 안전은 온전히 보장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외면하는 사회가 외치는 ‘재발방지대책’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며 정부를 비롯한 전체 사회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도 이날 성명을 내어 오늘날 여성 노동자가 처한 현실과 문제를 지적했다. 단체들은 “이 사건은 너무나도 명백한 여성혐오이자 젠더폭력의 결과이다. 국가와 회사의 부실한 시스템은 여성노동자가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했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 쪽의 직장 내 성범죄에 대한 안일한 대응도 세게 비판했다. 성명에서 단체들은 “이 사건은 여성 대상 스토킹범죄에 대한 사회적 제재의 미비와 사업장의 안전 불감증이 결부되면서 발생했다”고 짚으며 “가해자와의 철저한 분리와 피해자 보호는 전적으로 회사의 책임이다”고 주장했다.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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