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가 북상 중이던 지난 5일 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유순애·김동화 부부가 침수 걱정에 창 밖을 보는 등 잠들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8일 폭우로 침수된 집에 최근 장판을 새로 깔고 도배를 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5일 저녁 7시 반, 여느 때면 밥을 먹고 잠자리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유순애(71)씨는 안방 바닥에 깔아둔 휴대용 매트 위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낮에 몇 시간 동안 수건과 마스크, 옷가지 등 온갖 짐을 박스에 차곡차곡 집어넣느라 온 힘을 썼기 때문이다. 북상 중이던 태풍 ‘힌남노’가 다음날 아침 서울에 폭우와 강풍을 몰고 온다는 소식을 들은 유씨는 풀어놓은 지 얼마 안 된 짐을 ‘응급 구호세트’ 라벨이 붙여진 투명한 상자에 다시 담았다.
이날은 유씨 부부가 지난달 목숨을 앗아갈 뻔한 집에 다시 돌아온 지 7일째다. 지난달 8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는 밤 9시5분까지 1시간 동안 141.5㎜의 비가 내려 서울 시간당 강수량 최고치 공식기록을 뛰어넘었다. 유씨는 신대방동 옆 관악구 신림동에 살고 있다. 기자는 이날 밤 태풍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이들 부부와 함께 했다.
지난달 8일 저녁, ‘쏴아’하고 들리던 빗소리가 유씨의 귓가를 시끄럽게 때렸다. 저녁 8시 반께 “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화장실 변기 안에서 오수가 솟구쳤다. 뒤이어 다용도실 배수구에서도 물이 올라와 순식간에 집에 물이 들어찼다. 당황한 유씨는 이것저것 짐을 챙기려고 했지만 남편 김동화(73)씨는 “다 버리고 나가자”고 유씨를 말렸다. 부부는 허리춤까지 물이 차오르는 상태에서 지갑과 통장, 휴대전화를 겨우 가방에 챙기고 나왔다. 나온 지 20분 만에 창문 사이로 본 반지하 방 안은 천장까지 물이 차 있었다. “나중에 보니까 잠옷 입고 화장실 슬리퍼 신고 있었어. 정신이 없으니 그렇게 입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동네를 돌아다닌 거야. 70년 평생 내가 그런 일을 겪을 줄 몰랐어.” 유씨 부부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달 9일 간밤에 쏟아진 폭우로 유씨 부부 반지하 집이 물로 잠겨 있다. 유씨 부부 제공
앰뷸런스와 빗소리가 섞여들었던 그 밤, 부부는 벌벌 떨며 빌라 계단에서 밤을 꼴딱 새웠다. 맞은편 빌라에 사는 발달장애인 일가족이 결국 탈출하지 못해 사망했다는 사실도, 신사동 주민센터에 가면 대피소가 있다는 사실도 다음날에서야 알았다. 다음날 저녁께 찾아간 주민센터는 20여명의 이재민으로 북적댔다. 대피소는 일주일 뒤 확진자 발생으로 폐쇄됐다. 이재민들은 인근 모텔, 고시원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는 그래도 나이 많은 (기초생활)수급자라고 구청에서 호텔로 모셔줬어. 호텔에서 일주일 만에 처음 씻는데, 어찌나 머리랑 몸냄새가 나던지. 그래도 대피소 때 사람들이랑 정보도 나누고, 교회에서 먹을 것도 줬는데 호텔 방 안에는 우리만 있으니까 별로였지.” 유씨가 말했다. 대피소와 호텔에 지내는 동안에도 계속해 집에 드나들며 물을 빼내고 망가진 가구와 물건을 버렸다. 물을 더 빼내기 위해 주민센터에 양수기를 받으러 갔지만 대기번호 35번을 받았다. 결국 집주인이 사비로 두 대의 양수기를 설치해줬다.
지난달 26일 폭우로 침수된 유씨 집 냉장고가 무너져 있고, 벽지에 물이 스며들어 있다. 유씨 부부 제공
호텔에서 2주 지낸 부부는 ‘더는 머무를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지난달 30일 집으로 돌아왔다. 옷장과 서랍장, 책장과 책상, 옷과 이불 등은 모두 못 쓰게 돼 버린 상태였다. 물이 밴 벽지와 장판은 다 뜯어져 시멘트벽과 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평소 방에 향수를 뿌려둘 정도로 깔끔한 부부지만, 집 안은 오수 냄새가 배어있었다. 끊임없이 소독약과 선풍기로 냄새를 빼내 고약한 냄새는 사라졌다. 집주인과 아들의 도움으로 일주일 사이에 벽지를 새로 도배하고 장판도 새로 깔았다. 보일러는 고장 나 뜨거운 물도 안 나왔으나 집주인과 구청에는 미안해서 차마 말도 못했다. 출발하려던 쓰레기차를 세워서 다시 가지고 온 냉장고는 기계 수리를 하던 남편 김씨가 다시 만져 겨우 다시 작동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저녁 8시, 부부는 피곤한 몸을 일으켜 밥상 위에 흰 쌀밥과 감자 시래깃국, 이웃들이 챙겨준 멸치 반찬, 김치와 된장을 차렸다. 침수 후 처음 지어 먹는 밥이었다.
유씨 부부 반지하 집 다용도실과 연결된 외부 공간. 천장이 샌드위치 패널로 돼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부부는 태풍 걱정에 지난 4일 밤부터 쉽게 잠들지 못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4일 한숨도 못 잔 김씨는 5일 밤도 내내 바쁘게 움직였다. 청각장애가 있는 김씨는 보청기를 끼고 있어서 빗소리가 완전히 들리지는 않는다. 10분마다 창문을 열어 비를 확인했고, 양수기 근처를 떠나지 못했다. 양수기가 있던 다용도실을 나와 잠시 한숨을 돌리나 싶더니 이어 침수됐던 싱크대 서랍장 다리가 덜컹거려 균형이 맞지 않는다며 줄자로 다리 길이를 쟀다. 낮에는 인근 도림천에 가서 물의 수위까지 보고 왔다. 아내라도 자려면 본인이 보초를 서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오늘만 버티면 돼” 피곤하지 않냐는 질문에 김씨가 짧게 대답했다.
밤 9시. 다용도실 천장을 덮고 있는 샌드위치 패널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후두두’하고 거세졌다. 내내 “빗소리만 들으면 속상하고 불안하다”고 말한 유씨는 빗소리를 덮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특보에서 전국 각지의 비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중간에 유씨의 안부를 걱정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유씨는 자신이 걱정돼 잠이 안 온다는 친구를 한참 달랬다. “아이고, 내일 아침엔 더 많이 온대. 그래도 마음 편하게 자. 뭔 일 있으면 전화할게. 고맙다.”
결혼한 지 13년이 된 유씨 부부는 각자의 남편, 아내와 사별한 뒤 만난 두 번째 인연이다. 유씨의 딸들은 중국에서 살고 있고, 김씨의 아들은 일용직 노동을 하면서 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자녀가 주는 용돈을 합치면 100만원 안팎의 돈으로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며 살고 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20만원으로 살 수 있는 반지하 주택은 이들 부부의 최선이다. 이번 폭우로 유씨는 공공임대주택 이사를 알아보고 있다. 평소 남편 김씨는 “임대주택은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라며 임대주택 신청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아내에게 졌다. “내가 비 때문에 이제 여기 살기 불안하다고 하니까 얼마 전에 (남편이)임대주택 신청서 하나 쓰긴 했어. 내년 봄에는 이사를 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몰라.”
유씨 부부 집 방 한켠에 풀지 않은 이불과 옷가지 등 짐이 쌓여있다. 지난달 8일 폭우로 침수된 집에 최근 장판을 새로 깔고 도배를 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밤 11시. 유씨는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 저녁 8시30분에 잠들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생활 리듬이 폭우 피해로 깨진지 오래다. 당뇨와 심장병, 고지혈증이 있는 유씨는 약통을 연 뒤 병원에서 받아 온 알약을 삼켰다. 비가 온 뒤로 계속 어깨에 힘을 주다 보니 어깨 근육통이 심해져 급한 대로 파스도 붙였다. 빗소리는 더 거세지지 않고 일정한 박자로 들려왔다. 유씨는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그래도 그때만큼은 안 올 것 같다. 오늘은 좀 잠을 잘 수 있겠다”고 말했다. 집 안의 모든 물건을 상자 안에 싸놓은 유씨가 부엌으로 나가더니 그릇들을 상자에서 꺼내 싱크대 선반에 놓았다.
이내 자정이 됐다. 유씨는 불 꺼진 거실에 홀로 멍하니 앉아있는 김씨를 방 안으로 불렀다. 본인은 매트 위에 모기장을 치고 자겠다고 했고, 옆에는 이웃에게서 받은 새 이불을 깔아 남편의 잠자리를 만들었다. 머리맡에는 언제든지 나갈 수 있도록 지갑과 마스크, 안경과 통장이 든 가방과 옷가지와 휴대폰 충전기가 든 가방을 뒀다. “그래도 이번만 지나면 추석이야. 그때 아들 부부랑 손녀가 자고 갈 건데 고기 먹어야지.” 유씨의 목소리가 조금은 올라갔다.
6일 아침, 태풍 ‘힌남노’가 동해로 빠져나가며 서울은 태풍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청량했다. 유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 김씨도 이날은 잦아드는 빗소리에 잠을 청했고, 유씨도 아침 7시까지 잠을 잤다고 한다. “변변한 이부자리 하나 없어서 그 밤에 자고 가라고 못 붙잡아서 마음이 그랬어. 그래도 밤이 불안했는데 함께 있어 줘서 참 고마웠어.” 유씨 부부는 올해 비 걱정은 이제 끝이라고 했다. 내년에 이들은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5일 자정이 가까운 시각 잦아드는 빗소리에 유씨 부부가 잠에 들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달 8일 폭우로 침수된 집에 최근 장판을 새로 깔고 도배를 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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