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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반지하 비극’ 얼마나 됐다고…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6천억원 무더기 삭감

등록 2022-08-30 14:06수정 2022-10-26 23:30

청년원가주택 재원 마련 위해
공공임대주택 예산 25% 줄여

기초생활보장, 장애인 지원에
24조3천억원 편성했다지만
“증가폭은 물가, 최저임금 인상 수준”
최근 폭우에 따른 침수로 반지하 집에서 가족이 숨지는 등 주거 취약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확대 공급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지만, 30일 정부가 밝힌 2023년도 예산안에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을 5조6천억원 이상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이날 비가 내리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 모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최근 폭우에 따른 침수로 반지하 집에서 가족이 숨지는 등 주거 취약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확대 공급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지만, 30일 정부가 밝힌 2023년도 예산안에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을 5조6천억원 이상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이날 비가 내리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 모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부가 2023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며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을 5조6천억원 이상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폭우에 따른 침수로 반지하 집에서 일가족이 숨지는 등 주거 취약층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시급히 확대 공급해야 할 필요성이 확인됐는데도 관련 예산은 25% 이상 줄어든 것이다. ‘수원 세모녀’ 비극과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잇따르는데도 이를 막을 예산도 충분히 담기지 않았다.

30일 정부가 발표한 2023년 예산안을 보면, 중앙정부 재정 가운데 주택도시기금에서 지출되는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은 16조8836억원으로, 올해 22조5281억원에서 5조6445억원(25.1%)이 줄었다. 특히 반지하나 고시원 등 도심 비정상 거처 거주 가구 대상 ‘주거상향 사업’에 쓰이는 매입임대와 전세임대 관련 예산이 각각 3조797억원(33.6%), 1조143억원(21.8%) 삭감됐다. 무주택 저소득층 등에 공급되는 행복주택·국민임대·영구임대 관련 예산도 총 1조7247억원이 무더기로 감액됐다. 노후 공공임대주택 리모델링 예산도 올해의 절반 이상인 2760억원이 줄었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줄인 것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청년원가주택’과 ‘역세권 첫집’ 등 공공분양주택 소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정부는 밝혔다. 정부는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 140∼160% 이하 청년·신혼부부에게 시세의 70% 이하로 집을 분양하는 청년원가주택 등을 5년간 50만호 공급할 계획이다. 입주자는 5년 의무거주 기간 뒤 집을 팔 때 시세 차익의 70%를 가질 수 있다. 정부는 서울 도심에 이런 공공분양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용적률 상향과 민간 사업자 세제혜택 등 정비사업 활성화를 추진하는 대신 용적률 상향으로 늘어나는 주택의 절반을 기부채납 받을 계획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과거 이명박 정부 때도 지금처럼 도심 정비사업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공공임대보다 분양 주택에 무게를 실었다. 그 결과 고시원 거주 가구가 늘어나는 등 최저 소득층은 살던 곳에서 쫓겨 나갔고, 이들이 갈 만한 공공임대 공급은 줄었으며, 정비 사업지엔 높아진 분양가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 가구의 집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주택도시기금 잉여금이 2021년 결산 기준 47조4천억원에 이르러 공공주택 예산 전체를 늘릴 수 있는데도, 임대주택 예산을 줄여 분양주택 재원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원 세모녀 사건’으로 드러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예산도 충분치 않다. 정부는 내년도 기준중위소득 5.47% 인상에 따른 생계급여 인상과 생계·의료급여 재산기준 완화 등 빈곤층 소득 지원 예산을 2조3천억원 늘려 18조7천억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이에 따른 수급액 인상폭(4인 가구 기준 154만원→162만원)은 물가오름세를 고려할 때 실질구매력을 높이지 못하는 수준에 그친다. 게다가 국정과제인 생계급여 지급기준 완화(기준중위소득 30% 이하→35%이하)를 위한 예산이나, 의료복지의 최대 ‘사각지대’ 요인인 부양의무자 폐지를 위한 예산은 아예 담기지 않았다. 정부는 생계급여 수급액 인상폭과 속도 등은 필요한 실태조사를 마친 뒤 내년 상반기에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발달장애인과 최중증장애인 등 장애인 활동지원 확대와 보호자 우울증·사망 등 긴급상황 때 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설 긴급돌봄 최대 7일간 제공, 저상버스 2만3천대에서 4만3천대로 확충 등 장애인 관련 예산을 7천억원 증액해 5조8천억원 편성했다고도 밝혔다.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활동지원 예산 확대 폭(2514억원)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활동지원 수가(활동지원사 급여와 중개기관 운영비 등) 자연 인상분 수준에 그쳐 수급자나 활동지원사 모두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보호자가 우울증에 걸리거나 극단적 선택을 해 긴급돌봄이 필요한 상황 자체가 생기지 않게 국가의 장애인 돌봄을 대폭 강화할 예산을 짜야 했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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