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곳곳에 있는 식당과 카페 유리창 너머로 여유롭게 웃음짓는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이들의 얼굴을 지나쳐 300m가량 떨어진 주택가엔 중학생 ㄱ군(14)의 집이 있다. 주변엔 식당이 많지만 그는 몇달째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집은 쓰레기로 가득찼다. 어머니 ㄴ씨는 지난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아지더니 올해 초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집에 들어왔다.
“자주 굶는 거 같기도 하고, 한 번은 옆에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물을 받아서 집으로 오더라고요. 보다 못한 제가 그런 거 먹고 되겠냐, 밥을 해 먹어야지 그러니까 반찬이 없대요. 언젠가는 집 앞에서 근처 교회 목사들에게 자기 엄마가 집에 안 들어오는데 어떡하냐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ㄱ군의 이웃 주민인 60대 김아무개씨가 말했다.
강남경찰서는 지난달 29일 ㄴ씨를 아동복지법 위반(방임)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인 보호, 양육, 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방임 행위를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앞서 ㄴ씨는 26일 아들이 있는 곳과 거리가 먼 경기도 포천에서 검거됐다.
ㄴ씨는 지난 3월부터 6개월 동안 자택에 아들을 홀로 내버려둔 것으로 조사됐으나 ㄱ군의 이웃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ㄴ씨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곳은 본래 ㄱ군의 외할머니가 살던 집이지만, 몇해 전 ㄴ씨가 ㄱ군을 데리고 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씨는 “몇 차례 할머니와 ㄴ씨가 큰 소리로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결국 할머니가 나갔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ㄴ씨가 집에 들어오지 않자, 내가 ‘그렇게 애를 돌보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한소리를 하자 밥 사 먹으라고 돈 주고 있다고 되레 화를 내더라”고 말했다.
집의 위생 상태도 좋지 않았다. 이웃들은 ㄱ군의 집을 쓰레기가 가득했던 집으로 기억했다. 2일 찾아간 ㄱ군의 집 앞에는 현재 3∼4개의 상자만 놓여있지만 ㄴ씨가 가져다 놓은 잡동사니 상자가 현관문 앞과 복도에 천장 높이까지 쌓여있었다고 한다. 집 안도 쓰레기로 가득 차 있어서 ㄱ군이 집을 들어갈 때마다 문을 완전히 열지 못한 채로 들어갔다는 게 이웃들의 이야기다. ㄴ씨는 강아지까지 길렀는데, 이날 집 안에서는 혼자 있는 강아지가 짖는 소리만 들려왔다.
지난 2일 아동복지법 위반(방임)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40대 여성의 중학생 아들이 홀로 살던 서울 강남구 집 앞에 택배 박스 등이 쌓여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ㄱ군과 ㄴ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있었지만 구청 등에서 ㄱ군의 방임 사실을 인지한 것은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뒤다. ㄱ군과 따로 사는 성인인 누나가 지난 5월 ㄴ씨의 방임을 보다 못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경찰 관계자는 “신고자는 경찰에서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왜 구청·주민센터·경찰 등 공공기관은 ㄴ씨의 방임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ㄱ군과 ㄴ씨는 주민등록상 주소는 관악구였지만, 이들은 강남구에 실거주했다. ‘수원 세모녀’ 사건에서 드러나듯 주소지와 실거주지의 불일치는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로 ㄱ군을 밀어냈다. 관악구청과 강남구청은 경찰로부터 통보를 받을 때까지 ㄱ군이 방임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몇 차례 가정방문을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부재해 살펴보진 못했다. ㄴ씨에게 전화를 해도 ‘강남구에서 살고 있으니 특별하게 상담받을 것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ㄴ씨가 과거에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으나 사후 관리도 되지 않았다. 경찰은 “ㄴ씨가 처벌받은 지 시간이 꽤 오래 지났고, 피해 자녀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현재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아동학대·방임 위험이 높은 가구를 추출하는 이(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나, 취약계층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사례관리 서비스인 드림스타트 등이 운영되고 있지만 ㄱ군의 사례는 기존 복지 서비스에 포착되지 못했다. 강남구청은 “ㄱ군의 주민등록상 주소가 관악구이기도 했고, 신고 이전에 특별히 사례관리 대상자로 등록된 바는 없다”고 했다.
기댈 곳이 없던 ㄱ군을 받아 준 것은 지역 교회였다. ㄱ군은 쓰레기로 가득 찬 집에서 더는 생활하기 힘들자, 몇 년째 다니던 교회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해당 교회 목사는 “6월 말부터 집에 쓰레기가 너무 많아 지낼 수 없다고 해서 교회 예배실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착하게 자라온 아이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시설에 입소한 ㄱ군은 현재 퇴소를 희망한다고 전해졌다. 강남구청은 “외할머니와 함께 사는 방향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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