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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재난을 보는 나’ 기념한 윤 대통령의 사진 한장

등록 2022-08-27 09:30수정 2022-08-27 09:39

[한겨레S] 이라영의 비평
구경거리 만드는 정치

반지하 사망 ‘사진인증’한 대통령
‘괌 참사 기념사진’ 의원들 떠올라
눈 안띄는 불평등 인식조차 안해
‘구경거리 정치’로 문제해결 못해
지난 9일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의 ‘반지하 장애인 가족 참사 현장’ 방문 사진을 국정홍보용 카드뉴스로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실 제공
지난 9일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의 ‘반지하 장애인 가족 참사 현장’ 방문 사진을 국정홍보용 카드뉴스로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실 제공

1997년 8월6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에서 착륙 도중 추락했다. 이 사고로 228명이 숨졌다. 당시 이 사고를 조사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이 현지로 파견되었다. 그때 국회의원들은 거대한 비행기 잔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유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주검 수습도 어려워 유족들은 애가 타는데 정치인들은 그 참사 현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은 찍는다. 부서지고 일그러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비행기 잔해는 사고의 규모를 현장감 있게 전달할 수 있는 그럴듯한 병풍이 되어버렸다. 그 안에 수많은 죽음이 있었음에도.

사진으로 인증하기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이 강렬하게 무례한 사진을 25년 뒤에 떠올린 이유는 대통령실의 홍보사진 한장 때문이다. 2022년 8월9일 대통령이 쪼그리고 앉아 반지하를 내려다보는 사진 한장이 문제가 되었다. 침수되어 수없이 구조 요청을 했으나 끝내 빠져나오지 못해 세 가족이 사망한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 창문 앞이다. 이 사진에는 ‘집중호우 침수 피해지역 현장 점검’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진 속에는 대통령 외에 두 사람이 더 있는데, 시선은 모두 윤석열 대통령에게 향한다. 이 사진은 재난에 대해 말하는 사진이 아니다. ‘재난을 보는 나’를 기념할 뿐이다. 수많은 사람이 사망한 비행기 잔해 앞에서 현장 방문을 증명하는 기념사진을 찍듯이, 수해로 사람이 사망한 현장은 대통령의 ‘점검’을 증명하는 도구로 쓰였다. 전자에서 재난 현장이 병풍이 되었다면, 후자에서는 재난 현장을 바라보는 나의 위치가 과시적으로 드러난다. 이들에게 참사 현장은 피사체가 될 뿐이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수해 현장에 봉사활동을 가서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며 속내를 드러냈다. 그의 솔직함은 그만큼 ‘보이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방증이다. 그렇기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는 철저히 정치적으로 선택된다. 이번 수해로 컨테이너에서 잠을 자던 중국 국적 이주노동자가 산사태로 숨졌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주노동자 숙소를 들여다보는 사진을 찍진 않는다. 그럴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본다는 것

사진을 남기려는 정치인들의 욕망만큼이나 눈으로 보여야 반응하는 여론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달리 말하면, 눈에 직접 보이지 않으면 인식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상대적으로 ‘그림이 나오는’ 재난이 아니다. 정부에서 인정한 피해자만 4318명이고 그중 사망자는 1075명이지만 그들이 오랜 시간 겪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인 고통은 한순간의 사진으로 담아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진행된 기후위기는 우리 눈에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재난이 눈에 보일 때는 이미 수많은 생명이 고통을 겪은 뒤다.

고통스러운 사진을 응시하는 것과 고통을 인식하는 것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바라보기를 통해 진실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보이는 것으로 진실이 축소될 우려도 있다. 사진 바깥으로도 시선을 확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시각적 증명에 갇힌 정치, 마찬가지로 타자의 고통이 시각적으로 드러나야 반응하는 대중의 감정에도 의구심이 필요하다. 사진은 분명 타자의 고통에 대한 반응을 끌어내기에 좋다. 그러나 그 반응이 어디로 향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감정적 충격이 비판의식을 낳고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한순간의 충격에 머물기 쉽다. 잠깐 공분을 일으키게 만들어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고는 다시 잊히기 일쑤다. 2년 전 폭우로 전남 구례에서 수많은 소들이 떠내려가거나 높은 곳으로 떼 지어 이동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연민을 느꼈다. 그러나 그 감정이 축사에 갇힌 가축의 삶에 대해, 혹은 기후위기에 대해, 나아가 재난이 어떻게 약자에게 더 고통을 가하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이끌었는지는 의문이다. 물에 휩쓸려가는 소를 보면서 가슴 아파하지만 동시에 불판 위에 한우를 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해 피해 복구 현장에서 “비 좀 왔으면 좋겠다”고 발언한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수해 피해 복구 현장에서 “비 좀 왔으면 좋겠다”고 발언한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기생충처럼?

2019년 영화 <기생충>이 개봉된 이후, 이제 한국 사회에서 <기생충>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반지하’를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기생충>처럼’은 반지하 공간에서 살아가는 삶을 표현하는 하나의 관용어처럼 자리 잡았다. 이번 집중호우 피해를 알리기 위해 한국 언론은 물론이고 외국 언론까지 ‘<기생충>처럼’이라고 재난을 묘사했다. 반지하에서의 삶은 냄새나고 비참하게만 알려지고 그곳은 탈출해야만 하는 곳이며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집중호우 이후 오물과 흙탕물을 뒤집어쓴 가재도구가 이리저리 나뒹굴고 모든 것이 쓰레기로 보이는 엉망진창의 공간이 뉴스를 통해 반복적으로 보인다.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32만가구의 삶은 그렇게 단순해진다.

구경거리의 정치 속에서 고통에 대한 애도는 불가능하다. 호기심 충만한 구경꾼이 될 것인가, 용기 있는 목격자가 될 것인가. 행동하지 않는 목격자는 구경꾼에 불과하다. 사진에 찍히지 않아도 이 사회의 불평등은 꾸준히 곳곳에서 드러났었다. 기후위기가 여성에게, 경제적 약자에게 더 위험하다는 경고를 관련 전문가들이 이미 수도 없이 반복했지만 수해 현장에 정장 구두를 신고 나타난 대통령처럼 정치는 준비되지 않았다.

재산 가치로서 부동산 문제는 언제나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다. 그러나 빈곤 계층이나 이주노동자처럼 기본적인 거주 불안정을 겪는 이들의 문제는 쉽게 정치화되지 않는다. 이재민이 2500여명 발생한 재난에서 마치 문제의 원인이 ‘반지하’인 듯 그려진다.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발상은 더 나은 주거정책을 고민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가장 보기 싫은 대상을 없애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보이는 것에 반응할수록 보이지 않게 만들려 한다.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예술사회학자.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2020) <타락한 저항>(2019) 등의 저자. 사회의 구석구석을 비평합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정확한 비평의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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