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사동 일대 빌라촌 골목길에 수해쓰레기가 쌓여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기고]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
십년 넘게 일하다 다친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며 노동보건운동을 하던 그가 활동을 접겠다고 할 때, 나도 모르게 말했다. “애쓰셨어요. 떠날 힘조차 없어지기 전에 결정하셔서 다행이에요. 힘드셨죠?”
한참 나를 바라보며 망설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죽는 걸 더는 못 보겠어요.”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고 믿기 어려운 재해로 노동자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그는 장례식장을 찾아 죽음의 뒷자리를 지켰다. 그 고통의 시간은 그의 몸에 층층이 쌓여 있었다.
전업 활동가였던 그만큼은 아니지만, 사회적 약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데이터 분석을 해온 나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종종 찾아왔다. 2018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였던 한 노동조합원이 세상을 떠 장례식장을 찾았다. 2009년 77일간 옥쇄파업에 참여했고 9년 넘게 공장에 돌아가기 위해 싸우던 이였다. 내 연구팀이 진행한 해고노동자 건강 연구에 참여해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롭고, 무엇보다 억울했는지 증언했던 이였다.
지난 8일 폭우가 내리는 동안
서울 신림동 반지하 방에서 3명이 숨졌다. 46살 홍아무개씨는 갑자기 쏟아진 빗물에 잠겨 발달장애를 가진 언니, 자신의 10대 딸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물이 들이치는 과정에서 그들이 느꼈을 공포를 지우지 못해 며칠을 서성였다. 참사 이틀 뒤,
서울시는 ‘지하, 반지하’를 주거 목적으로 짓는 것을 전면 불허하고, 향후 20년 안에 반지하 주택을 모두 없애겠다고 밝혔다. 다음날 숨진 홍씨가 2018년 내가 책임연구원으로 진행한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 노동자 건강실태 연구’의 참여자였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세월호 참사가 떠올랐다. 가라앉는 배에서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했던 304명처럼, 반지하 방에 살던 세 가족은 물에 잠겨 밖을 나오지 못한 채 세상을 등졌다. 2014년 살릴 수 있었던 사람을 살리지 못했던 참사를 두고 당시 대통령이 내놓았던 대책은 ‘해경 폐지’였다. 구조 과정에서 무책임했던 해경 처벌은 필요했지만, 황급하게 해상안전을 책임지는 국가기관을 폐지하는 것이 미래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대책일 수는 없었다. 지난 8년을 돌이켜보며 되묻는다. ‘해경 폐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이번 서울시 대책은 얼마나 다를까. 장기적으로 반지하 거주자가 줄어야 한다는 데에 이견은 없다. 하지만 반지하를 좋아해서 거주하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햇빛이 들지 않는 자리를 찾아온 이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반지하 방이 없어지면 그들은 더 안전한 곳을 선택해 살 수 있을까. 정책 결정 과정에 지하와 반지하에서 살고 있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반영됐는가. 그 복잡한 맥락을 헤아릴 시간도 가지지 않은 채 반지하 주거금지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 세상은 복잡하다. 사회문제 해결은 그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한다.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푸는 대신, 큰 칼을 휘둘러 자르는 행동은 칼을 휘두르는 이를 영웅처럼 보이게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영웅적 행동은 종종 상황을 악화시킨다.
면세점 노동자였던 홍씨는 과거 회사의 엄격한 ‘꾸밈 지침’과 관련해
“면세점 직원들은 상품보다 빛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겨레>와 인터뷰했다고 한다. 상품이 빛나기 위해 인간이 희생돼선 안되듯이, 정책을 돋보이려 주거취약지에 머무는 이들의 삶을 지워서는 안 된다.
재난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는 약자를 먼저 덮친다. 가장 약한 이들이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나는 비극의 연쇄를 막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언적인 성급한 대책 발표가 아니다. 어떤 정책으로 생겨날 영향력을 면밀히 검토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난한 협의 과정이고, 그 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의지와 인내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이들은 그 지난한 조율 없이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힘이 있다.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어 ‘합리성’을 획득하고 있으니까. 면밀한 검토와 협의 없이 선포되는 정책 결정 과정은 약자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투정이나 무능함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참사 대책이 결국 미래의 또 다른 참사를 만드는 시작이 아니라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