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 6월27일 성남 서울공항을 출발한 공군 1호기에서 자료를 검토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있는 김건희 여사. 대통령실 제공
국민대가 지난 1일 “2007년에는 연구윤리 기준이 없었다”는 취지로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논문 4편에 대해 ‘학문적 면죄부’를 주자, 교수사회와 학계에서는 연구기관으로서 대학 권위를 스스로 저버린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당시에도 기준은 있었으며, 기준 유무와 별개로 연구윤리를 지키는 건 기본”이라는 것이다.
학계에선 논란이 된 김 여사 논문들이 나온 2007년에는 이미 연구윤리 위반에 관한 폭넓은 논의와 합의가 이뤄지고 관련 지침이 마련되기 시작한 때라고 지적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2일 <한겨레>에 “학계마다 다르긴 하지만, 2000년대 초부터 연구윤리헌장 등이 마련되다가 2005년 황우석 사태를 기점으로 연구윤리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다른 학문 분야로) 전방위적으로 확산·제도화됐다. 물론 그 전에도 논문 표절 논란 등이 있었지만 이를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관행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고 했다.
박정원 상지대 교수(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는 “2007년 전부터 표절 문제가 불거져서 학계에서 연구윤리에 관한 학술토론회나 기자회견을 많이 했었다. 이번 국민대 판단은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해당 논문과 관련된 교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 의심된다”고 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이미 당시에도 논문 표절에 대한 학계의 긴장도가 높아진 상태였다. 2005년 이후에도 그런 논문이 작성됐다면 완전히 고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민대 말처럼) 연구윤리 시스템이 없었다는 이유로 표절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학부생들도 에세이 쓸 때 표절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지 않나. 논문 표절 논란이 나올 때마다 ‘당시 기준으로는 괜찮다’고 하는데 타당하지 않다. 교수라는 사람들이 ‘표절 기준이 없었다’는 말로 사안을 면피하는데, 이런 변명이 젊은 세대의 도덕성과 가치관 붕괴로 이어지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국민대 내부에서도 “몇 개월에 걸친 조사를 통해 궤변을 만들어 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대 교수는 “지금처럼 컴퓨터를 이용한 표절 검사는 없었더라도 인용과 각주 등 출처 표기와 관련한 기본적인 규정은 다 있었다. 특수대학원이라 하더라도 박사학위를 기준 없이 막 줄 수는 없는데, 과거 돈벌이 용도로 인식되던 특수대학원의 학위 남발 관행을 대학 스스로 옹호한 결정”이라고 했다.
2012년 국민대가 문대성 전 새누리당 의원의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 불과 보름여 만에 표절 판정을 했던 사례도 재소환됐다. 문 전 의원의 박사학위 논문 역시 김 여사 박사학위 논문과 비슷한 시기에 작성됐다. ‘김건희 논문 심사 촉구를 위한 국민대 동문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김건희씨 논문 판단에 쓰인 근거들이 문대성 전 의원 논문 검증에는 반대 논리로 쓰였다는 의견이 있다. 김건희씨 논문 재조사에 참여한 교수 명단과 최종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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