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사체은닉미수, 미성년자약취 혐의를 받는 구미 3살 여아 친모 석아무개(49)씨가 대구지법 김천지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자신의 출산 사실을 숨기고 친딸이 낳은 아이와 ‘바꿔치기’한 혐의를 받는 석아무개(49)씨가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대법원은 석씨의 ‘바꿔치기’ 혐의에 대한 직접적 증거가 없어 유죄 여부가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6일 미성년자 약취(납치)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석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2020년 8월 경북 구미 다세대주택에서 ㄱ(당시 3살)양이 탈수와 기아로 숨을 거뒀다. ㄱ양의 모친인 김아무개(23)씨는 장기간 딸을 방치해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다. 2021년 2월 할머니인 석씨가 ㄱ양의 주검을 발견했다. 석씨는 딸 김씨가 처벌을 받을까 우려해 ㄱ양의 주검을 매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범행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 등으로 남편을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사건 발생 뒤 ㄱ양의 주검을 유전자 검사해보니, 석씨가 ㄱ양의 친어머니일 확률이 99.9999%로 나왔다. ㄱ양은 석씨의 손녀가 아니라 딸이었던 셈이다. 결국 석씨는 2018년 3월말 혹은 4월초 경북 구미 한 산부인과에서 딸 김씨가 낳은 아이와 자신이 같은 달 낳은 아이를 바꿔치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석씨는 계속해서 혐의를 부인했다. 수사기관은 석씨가 데려간 딸 김씨의 딸(손녀)과 숨진 ㄱ양의 친아버지도 찾지 못했다.
1심은 석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전자 검사 결과를 들어 숨진 ㄱ양의 친어머니가 석씨가 아닐 확률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산부인과에서 ㄱ양 발목에 채워둔 식별띠가 빠진 채로 발견된 점 등도 ‘바꿔치기’를 입증하는 간접 증거로 봤다. 당시 재판부는 석씨가 불륜관계에서 예정에 없는 임신을 해 아이를 바꿔치기했을 수 있다고도 판단했다. 구체적인 바꿔치기 수법 등에 대해 의문이 남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바꿔치기가 입증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2심도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바꿔치기 혐의 자체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목격자 진술이나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등 직접 증거가 없는데, 미성년자 약취 혐의를 유죄로 확신하기엔 의문점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유전자 감정 결과가 증명하는 대상은 ㄱ양이 석씨의 친딸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불과하다”며 “유전자 감정 결과만으로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설사 ‘바꿔치기’ 행위 자체가 인정되더라도, 석씨와 딸 김씨가 합의했다는 등 ‘납치’라는 범죄 행위로 판단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목적과 의도 등에 대해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도 밝혔다.
이어 대법원은 사실심에서 판단해야 할 구체적인 의문 사항도 제시했다. △석씨가 자신의 출산 사실을 감추려는 마음만으로는 범행 동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자신의 딸을 적극적으로 돌보지 않은 석씨 행동도 설명하기 곤란하며 △산부인과 식별띠가 분리된 이유도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는 등이다.
한편, ㄱ양을 홀로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유기치사)로 재판을 받은 석씨의 딸 김씨는 지난해 9월 징역 20년을 확정받았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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