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대통령 부인도 피하지 못한 ‘테이블 성차별’

등록 2022-06-04 08:47수정 2022-06-06 11:55

[한겨레S] 이라영의 비평
여성 착취의 공간 ‘남자들의 방’

일본 총리 아내의 손님 차 대접
접대하는 역할 여성에 맡긴 것
유흥이라는 이름의 성착취 만연
‘남자들의 방’서 스스로 나와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의 아내 유코 여사(오른쪽)가 지난달 23일 일본을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차를 대접하고 있다. 일본 총리 관저 누리집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의 아내 유코 여사(오른쪽)가 지난달 23일 일본을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차를 대접하고 있다. 일본 총리 관저 누리집

☞한겨레 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몇년 전 결혼정보회사가 발표한 설문조사 자료를 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남성들은 데이트 비용 중에서 가장 아까운 항목으로 식비를 꼽았다. 그뿐만 아니라 남성들은 여성이 제 돈으로 자신이 먹을 간식비를 써도 ‘아까운 지출’로 여겼다. 그런데 또다른 결혼정보회사가 발표한 한 자료에서 남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성의 취미는 요리였다. 한편 맛집 탐방은 선호도가 낮았다. 다시 말해 남성은 누구 돈이든 여성이 먹는 것에 돈을 쓰는 걸 가장 아까워하지만, 요리가 취미인 여성을 선호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식탁은 일상의 신분제도가 발현되는 가장 작은 영토이다. 이 영토에서 여성은 시중드는 존재다. 얼마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부인 기시다 유코는 기모노를 차려입고 차를 대접했다. 이는 극진한 환대로 여겨졌다. 일본과 미국의 두 남성 정상이 테이블에 앉아 있고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이 옆에 서서 차를 따르는 이 문제적 환대 장면은 한국 언론에도 전달되었다. ‘일본의 미’를 전달한다는 아름다운 포장을 모두 걷어내고 보자면 핵심은 분명하다. 접대는 여성의 역할이다. 이것이 남성 중심 정치의 보편적 외교이다.

여성 상품화로 남성 권력 과시

영부인이 ‘손수’ 말린 곶감을 국빈에게 대접했다거나 손수 만든 샌드위치를 대통령실 직원을 위해 대접했다는 뉴스가 고집스럽게 떠도는 이유는 그것이 최고 권력자 옆에 있는 여성의 역할임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식탁이라는 장소에서 여성은 어떤 식으로든 시중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대통령 부인은 접객의 순간을 가장 우아하게 체현하도록 요구받는다.

사실상 이 사회는 잠재적으로 모든 접객원이 여성이라고 여긴다. 식품위생법에서 유흥종사자를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라고 정의했듯이, 유흥업소의 접객원은 곧 여성이다. 달리 말하면 여자는 유흥의 한 요소다. 공식 만찬장에서 보이는 우아한 차 대접과 어두침침한 뒷골목 업소에서의 유흥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시중을 필요로 한다.

반성매매 활동가인 황유나는 책 <남자들의 방>에서 유흥업소의 성정치를 분석한다. 버닝썬이나 아레나처럼 유명한 클럽이 돌아가는 구조를 분석하며 그 안에서 남성들이 진정 도취하는 것이 무엇인지 짚어낸다. 클럽 안의 테이블과 플로어는 암묵적으로 성별 구분이 되어 있다. 남성은 돈을 내고 테이블에 앉고 여성은 무료입장이라는 ‘혜택’을 받아 플로어에 위치한다. 남성들은 플로어에 있는 여성을 선택하며, 여성들은 선택받아야 테이블에 앉게 되는 구조다. 나아가 남성도 돈을 많이 쓸수록 클럽 안의 남성들 사이에서 주목받을 수 있다. 황유나는 “주목경제 사회에서 클럽 안의 시선을 결집시킬 수 있는 구매력은 곧 남성성의 실천, 남자됨”이며, “여성에게 폭력적으로 굴어도 괜찮을 수 있는 ‘힘 있는 남성이 되는 즐거움’을 위해” 돈을 쓴다고 밝힌다.

이 성정치가 단지 유흥업소에 머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유흥업소 안에서의 성정치는 이성애 권력관계의 극단적 축소판일 뿐이다. 여성은 사람으로 오는 게 아니라 테이블에 올릴 상품으로 오기 때문에 클럽의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레이디 크레딧>의 저자인 여성학자 김주희는 이를 ‘테이블의 성경제’라고 명명했다. 남성들은 성차별 사회에서 여성을 상품으로 대하며 이 상품으로 자신의 남성성 권력을 과시하는 방법을 익힌다.

<남자들의 방> 인터뷰에 참여한 여성들은 업소에서 일할 때 자신들이 남자 손님의 ‘노예’가 되는 기분이라고 한다. 남자들이 유흥을 위해 돈을 주고 구매하는 것은 그 시간 동안 여자를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이다. 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상품이기 때문에 당연히 여성의 동의 여부는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여성에 대한 성적 침범은 남성에게 유흥의 한 요소다. 이처럼 돈을 쓰면 여자를 노예로 만드는 구조에 익숙한 사회에서 여자와 동등한 관계로 밥을 먹기 위해 돈을 쓰거나 혹은 여자 스스로 (노예인 주제에) 주인처럼 제 돈으로 뭘 먹는다는 건 낭비라 생각한다.

단톡방 성희롱에서 최소 27만명의 남성들이 공모한 텔레그램 엔(n)번방의 끔찍한 성착취까지, 이 모든 사이버 지옥은 이러한 현실 지옥의 연장이며 부산물이다. 엔번방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에는 박사 조주빈과 갓갓 문형욱을 추적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이들 모두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주목받음에 도취하는 태도가 눈에 띄었다. 엔번방에서 착취하는 여성들을 ‘노예’라 부르며 구속하는 행위는 그동안 남성들의 일상에서 ‘유흥’이라는 이름으로 만연하던 여성 착취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이 사회에는 온갖 종류의 남자들의 방이 있다. 일명 ‘방석집 논문 심사’도 이런 구조 속에서 가능했다.

‘남자들의 방’을 어떻게 할까

엔번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닭장집’이라 불리던 방이 있었다. 기지촌 여성들이 집단 수용된 공간인 닭장집에는 여자들이 살았다. 여자들은 이곳에서 ‘몇번 방 여자’로 불렸다. 현재는 국제문화마을로 이름이 바뀐 군산 산북동 아메리카 타운이다. 1969년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기지촌이다. 이곳은 외화를 벌어오는 ‘국위선양’의 장소로 여겨졌다. 국가가 여성을 적극적으로 돈벌이에 이용했다. 미군 기지가 축소되면서 타운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올해는 14명의 여성이 사망한 군산 개복동 화재 참사 20년이 되는 해다. 그곳은 또다른 성매매 집결지였다. 미군이 아닌 평범한 한국 남성들이 이용하던 ‘방’이다. 그 방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취급받았을까. 테이블에 올려 착취하는 돈벌이용 상품과 밥 차려주며 희생하는 어머니로만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들이 만든 방이다. 남성이 이 폭력적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남자들의 방’을 폭파하고 스스로 나오는 것이다.

예술사회학자.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2020) <타락한 저항>(2019) 등의 저자. 사회의 구석구석을 비평합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정확한 비평의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시민 10만명, 체감 -10도에도 “내란 안 끝나” 분노의 집회 1.

시민 10만명, 체감 -10도에도 “내란 안 끝나” 분노의 집회

“작은 윤석열까지 몰아내자” 대학생들 극우 비판 시국선언 [영상] 2.

“작은 윤석열까지 몰아내자” 대학생들 극우 비판 시국선언 [영상]

“식사도 못 하신다”…인생의 친구 송대관 잃은 태진아 3.

“식사도 못 하신다”…인생의 친구 송대관 잃은 태진아

건물도면 올리고 “척살” 선동…‘헌재 난동’ 모의 커뮤니티 수사 4.

건물도면 올리고 “척살” 선동…‘헌재 난동’ 모의 커뮤니티 수사

누나 생일엔 일어나길 바랐지만…6명에 생명 주고 간 방사선사 5.

누나 생일엔 일어나길 바랐지만…6명에 생명 주고 간 방사선사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