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티에프(TF) 전문위원회 오지원 변호사(왼쪽부터), 서지현 검사, 이지원 S2W 부대표.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그래픽_스프레드팀
서지현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태스크포스(TF) 팀장은 16일 급작스럽게 법무부 파견을 마쳤다. 법무부는 이날 오후 4시께 서 검사에게 17일부터 소속 검찰청인 수원지검 성남지청으로 복귀하라고 지시했다. 하던 업무를 정돈하고, 짐을 쌀 시간도 주지 않은 셈이었다. 서 검사는 “모욕적인 복귀 통보”라며 16일 즉각 사직서를 냈다. 법무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의 디지털 성범죄 예방책과 근절책을 마련하던 사람들의 노력은 이렇게 멈춰 섰다.
서지현 검사를 필두로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티에프(TF) 전문위원회(위원장 변영주 영화감독)가 꾸려진 것은 지난해 8월의 일이다. 위원회는 디지털 젠더폭력·법률·사이버범죄·문화예술인 등 각 분야 전문위원 10명과 자문위원 12명으로 채워졌다. 디지털 성범죄 등 젠더 폭력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어벤저스’들이었다. 전문위는 지난 9개월 동안 45차례 회의를 하고, 60여개 조문의 권고안을 냈다. 정부 부처 산하의 각종 ‘위원회’가 1년에 수차례 정도의 회의를 하는 것에 견주면 기록적인 활동이다.
서 검사는 지난 아홉달 동안 백방으로 뛰었다. ‘디지털 성범죄를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서다. 검찰 내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고 온갖 2차 피해 등에 시달린 뒤에도 그는 늘 “나는 ‘씨를 뿌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성폭력 피해 당사자로서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지난 아홉달동안 그를 채찍질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꾸려진 전문위가 윤석열 정부에서 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은 있었다. 전문위가 서둘러 그간의 행보를 담아 지난 6일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티에프 전문위원회 활동과 성과’ 책자를 펴낸 이유다. <한겨레>는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서지현 검사와 전문위원인 오지원 변호사, 사이버보안 전문가 이지원 에스투더블유(S2W) 부대표를 만났다. 전문위 활동의 경과와 활동상을 묻기 위해 진행한 이 인터뷰는 ‘검사 서지현’의 마지막 인터뷰가 됐다.
<인터뷰 ①에서 이어짐>
―신종 디지털성범죄나 플랫폼은 생겨나는데, 그걸 범죄라고 규정하고 처벌하는 데는 시간이 한참 걸린다. 이런 반복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가.
이지원(이) “특정 사이트만 없앨 것이 아니라 성착취물이 어떤 경로로 유통되는지 패턴 등을 분석해야 한다. 각 플랫폼에서 성범죄나 성착취 유인을 하는 게시물들은 하나하나가 큰 문제는 아닐 수 있지만, 이게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알면 문제가 된다. 정부는 이런 맥락을 파악하고 위험하다고 여기면 이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 미국에서는 랜섬웨어와 관련해 여러 해킹 공격이 있고, 심각한 범죄를 일으키니까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 전쟁을 선포한 적이 있다. 결국 많은 보안기업이 기술적 교류를 하면서 범죄자를 잡는 성과를 올렸다. 이미 여러 가지 디지털성범죄를 추적하는 방법론은 존재한다. 잡을 수 있다, 없다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큰 어젠다를 갖고 국가 차원의 대응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디지털성범죄의 ‘맥락’을 파악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디지털성범죄가 일어나는 사이버, 온라인의 생태계를 정부나 수사기관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생태계를 파악해 다양한 플랫폼에 접근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정보를 자동으로 위험한지 위험하지 않은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서지현(서) “이를 위해 종합적 기구가 필요하다. 여러 전문가는 당장 나온 범죄 기술을 지금의 기술이 쫓아가지 못해도 꾸준히 연구할 수 있도록 ‘기술뱅크’가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처럼 연구마저 제대로 하지 않고, 땜질식으로 대처해서는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지난 6일 나온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티에프 전문위원회 활동과 성과’ 책자. 이정연 기자
―전문위 권고안이 피의자 인권, 권리와 충돌하는 부분에 대한 지적도 있다.
오지원 “성범죄를 포함한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경우, 절차적 권리 소외가 사건의 실체적 판단과 양형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왔다. 재판 과정에서는 피해자를 대변해야 하는 검찰이 수사에 지나치게 조직적 역량을 투입하느라 공판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피해자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 주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차 통지, 실체적 판단 및 양형에서 진술권의 실질적 보장은 피고인에게 보장된 절차 참여권에 겨우 맞춰나가는 정도이다. 이것이 피고인의 권리와 충돌한다고 볼 수는 없다.”
―피해자들이 전문위에 직간접적으로 전한 이야기가 있었을지 궁금하다.
서 “편지 몇 통을 받았다. ‘당신은 힘이 있으니, 빨리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는 법률을 만들어라’라는 내용이었다.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아무런 강제력도 효력도 없는 권고안 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어떤 권한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위는 이 사회에 많은 숙제를 남겼다. 서 검사는 어떤 숙제를 안고 떠나나.
서 “2018년 검찰 내 성폭력 문제를 알린 뒤 조직적 은폐·거짓말·음해·괴롭힘 등보다 더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웠던 건 ‘변하지 않는 현실’이었다. ‘어떻게 이토록 변하지 않을 수 있나’하는 생각에 힘들었고, 그래서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제시하는 ‘성범죄 종합대책’을 직접 만들어보자며 전문위를 시작했다. 때로는 ‘왜 국가가 법과 제도를 바꾸지 않아, 피해자인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대책을 만들어야 하나’하는 생각에 원망스럽기도 했다. 보람과 고통 가운데 무엇이 더 컸는지 선뜻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도 대한민국 검사로서, 그토록 간절히 원했지만 검찰에서, 법정에서 결코 세울 수 없었던 정의에 이렇게라도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이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가상현실 속 인물이 아니라, 감정과 영혼을 가진 살아 숨 쉬는 실제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 전문위는 너무 절박했다. 너무 간절했다. 성범죄를 제대로 예방하고 처벌하고,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기를 바라는 전문위 모두의 마음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절박함과 간절함이 되어 변화를 가져오기를 바란다.”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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