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라는 놈이 원체 미꾸라지 같잖나. 젖은 모래알, 흐르는 물이다. 움켜쥐려 할수록 내 손을 빠져나간다.
그러니까 이게 다 꼬꼬무 덕이다. 무슨 말이냐. 지난 연재에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가 불면을 유발한다는 글을 썼다. 고맙게도 애독자(?)들에게 잇단 피드백을 받았다.
한 친구는 꼬꼬무 끊기에 유용할 거라며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당신에게>를 권했다. 카를 융을 전공한 심리학자가 쓴 책이다. 또 다른 친구는 나랑 비슷한 일을 겪었단다. 잔돈도, 카드도 없이 5만원짜리 한장 달랑 들고 버스를 탔다가 ‘현금 무쓸모 월드’로 입성한 에피소드에 빵 터지더라. 그것뿐이랴. 그날 영접한 천사 승객이 버스비를 줬어야 한다고 농담한 선배도 있었다. 업무생산성 유지를 위해서라도(!) 숙면하라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꼬꼬무에는 꼬꼬무라던가. 꼬꼬무 얘기에 꼬꼬무 피드백이라니.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열독을 부탁드린…. 아니, 삼천포로 새지 말자.
불면인에게 ‘갑’은 불면을 걱정하는 꼬꼬무다. 정말 해롭다. 때로는 눕자마자 불안이 엄습한다. 오늘도 제대로 못 자면 어쩌지? 새벽 4시쯤 또 깨지 않을까? 언제쯤이면 나도 통잠을 자볼까? 7시간은 푹 자야 하는데? 밤이 깊어가면 더 환장한다. 잠은 안 와, 정신은 맑고 투명해, 어깨는 긴장감에 뻣뻣해져, 이윽고 내 숨소리까지 거슬릴 지경이 되면 샘솟는 원망. 볼테르는 왜 이상한 소릴 한 거야?
“신은 현세의 여러 근심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에게 희망과 수면을 주셨다.”
이봐요, 볼테르 할아버지. 근심을 보상하는 게 희망과 수면이라면서요. 그럼 수면 자체가 근심이자 절망이 된 나 같은 중생은 어쩌란 거요?
억울하면 잘 자면 된다는 말은 하지 말자. 공감능력 제로라는 타박만 받으니까. 잠이라는 놈이 원체 미꾸라지 같잖나. 젖은 모래알, 흐르는 물이다. 움켜쥐려 할수록 내 손을 빠져나간다. 잠이 곧 스트레스인 상황. 이것부터 벗어나야 불면을 벗어날 텐데, 알면서도 안 되는 거니 뭐. 무력한 순간이다.
불면이 유발하는 불면은 기분 탓이 아니다.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있다. 자야 할 시간에 수면을 둘러싼 부정적 생각이 들면 불안이나 절망을 느끼는데, 이런 감정은 스트레스 반응을 작동시킨다. 심장박동과 혈압, 근육 긴장, 호흡수가 높아지고 뇌파가 빨라진다. 결과적으로 두뇌의 각성 시스템이 활성화되고, 수면 시스템은 약화되면서 불면이 불면을 부르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럴 땐 어쩌나. 책이라도 봐야지. 제목이 무려 <하버드 불면증 수업>인 책이다. 불면증 인지행동요법을 연구해온 하버드 의대 전문의인 그레그 제이컵스가 썼다. 부제는 ‘약 없이 푹 잠드는 하버드 의대 6주 수면 프로그램’. 최근 혐오정치를 일삼는 한 정치인 때문에 이미지가 폭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하버드는 하버드니까.
핵심은 이렇다. 사람마다 키와 체중이 다르듯 필요로 하는 수면시간도 다르다. ‘코어수면’ 5시간30분 정도만 자도 일상생활이나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인식하라. 그럼 잠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느긋해져 더 잘 자게 될 것이다. 흐음, 그러니까 일부러 5시간 반만 자라는 건 아니네. 잠 좀 못 자도 사는 데 지장 없다는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불면으로 인한 불안을 없앨 수 있다는 거네. 플라세보 효과를 역이용한 인지요법이다.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은 아니다. 수면장애를 겪는 이들은 대개 낮에 제대로 생활할 수 있을지 염려하는데, 저자는 수면 총량이 적은 병원 수련의나 대서양 횡단 요트 레이서 같은 이들의 사례 및 불면증 연구를 근거로 이를 불식한다. 불면증이건 아니건 코어수면, 즉 5시간30분 미만으로 자지 않는 한 주간수행력이 유지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는 것이다. 먹는 행위랑 비슷하다. 활동대사량 같달까. 활동에 필요한 최소 섭취량보다 더 먹으면 포만감과 함께 기분이 좋아지지만, 좀 덜 먹는다고 죽는 건 아닌.
자, 이때 몽니를 부리는 세력이 등판하니 그들이 누구냐. 그 이름도 유명한 ‘수면허세파’다. 적게 자도 괜찮다는 말은 허세고, 건강하려면 반드시 7~8시간은 자야 한다고 주장하는 패거리. 물론 그 대척점에는 이번 글과 깊이 유착된 ‘수면불안파’가 있다. 최근 맹위를 떨치는 ‘수면불안파’는 알고 보면 ‘성공하려면 4시간만 자라!’의 변종이라는 설과 신흥 세력이라는 설이 분분한데, 이렇듯 불면계는 당파싸움이 한창이다. 그 논쟁의 치열함이 조선시대 예송 논쟁 못지않다는 소문 들어보셨는지. 이 흥미진진한 얘기는 다음 기회에.
나는 지금 이 글을 비행기 안에서 쓰는 중이다. 편도 기준 기내식 4번, 간식 1번, 경유 대기 5시간. 강제적 불면의 시간이다. 5시간 반을 사수하기는커녕 좁은 좌석에 접힌 듯 앉아 졸다가 아침이면 떨어지는 일정. 잠도 짐도 이고 지고 눈부신 거리를 쏘다니다 보면 코어수면의 효용을 절로 깨달으리라. 물론 지금은 불면을 염려할 기력조차 없다만. 눕자마자 기절이 뻔한 건 비행기에서 못 자서만은 아니다.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불면증 인지행동치료 전문가들에 따르면 ‘7~8시간은 자야 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잠들어야 한다’, ‘일어났을 때 몸이 가뿐해야 한다’ 같은 규칙과 당위가 불면을 악화시킨다고 한다. 알고 있는 모든 규칙과 원칙을 버려라. 다만, 코로나19 엔데믹을 맞아 한가지는 알아두자. 시차 장애로 인한 불면증이 왔을 땐, 시차 적응은 하루에 1시간씩 조절되니 참고할 것. ★★★★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