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개 청년, 인권, 시민단체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익명의 악플이 만든 대학생 사망 사건과 관련해 학내 사이버불링, 혐오표현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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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는 수가 적으니 더 많은 다수를 우선해야 한다.”
대학 2학년 때 한 교수님이 한 말이다. 전통혼례에 대한 조별 발표가 있었고 한 학생이 “세상이 많이 변화했고 성소수자도 존재하니 결혼을 남녀의 결합으로만 보기 어렵지 않겠냐”고 질문했다. 불안한 눈빛으로 강의실을 둘러봤지만 딱히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학생은 없었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나 보다 싶어서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 교수님의 입에서 저 말이 튀어나왔다. 손에서 흐른 땀으로 노트가 축축하게 젖을 만큼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결국 손을 들고 교수님이 하신 말씀은 차별이라고 말했고, 교수님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갑자기 내 수업 태도를 지적하며 점수를 깎겠다고 했다. 결국 교수님은 내게 C+라는 낮은 학점을 선사하며 자신의 차별 서사를 완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나게 많은 대학생이 강의실에서, 과방에서, 동아리실에서 이런 말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경험이 아주 예외적인 게 아니라는 뜻이다. 공주교육대 성평등연구회 ‘이상’의 2019년 조사 결과를 보면, 재학생 1477명 중 성별에 따른 차별을 경험한 적 있는 응답자가 40%였고, 그중 성차별적 발언을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37%로 가장 많았다. 차별이 발생하는 장소를 온라인 커뮤니티로 축소했을 때도 그 수는 어마어마했다.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의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혐오표현 대응 ‘F5 프로젝트 보고서’를 보면, 2020년 5월부터 9월까지 25개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한 결과 약 600개의 혐오표현이 담긴 게시글과 댓글을 발견했다. 분명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에 대학에 있는 학회나 모임에서 하는 혐오표현을 수집하고 고발하는 활동을 여러 번 봤는데 혐오표현이 얼마나 빠르게 많이 만들어지는지 2022년이 되어도 여전히 이런 활동은 인기가 있다.
왜 대학에서 발생하는 차별적인 발언, 즉 혐오발언은 개인이 맞서 싸우거나 학회나 모임이 고발하는 수준에서 끝이 날까. 어디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한번은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어난 사이버불링을 고소하러 경찰서에 간 적이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혐오발언부터 ‘선을 넘은’ 공격까지 50개가 넘는 댓글은 모두 나를 향해 있었다. 고소장을 들고 경찰서에 갔다. 사이버수사과에서 만난 경찰은 일단 상담부터 하자며 댓글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페미 맞아요? 성 두 개 쓰는 것도 맞아요?” 이걸 왜 물어보나 싶었지만 “예, 맞는데요” 대답했다. 한참 동안 댓글을 소리 내서 읽던 형사의 결론은 더 이상했다. “나는 이 댓글에서 모욕감을 못 느끼겠는데? 이런 건 고소해도 잘 안돼요.” 형사의 말을 더 듣기가 힘들어 고소 안 하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경찰은 자기가 지금 더 급하고 중요한 사건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다는 말을 하며 나를 보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혐오발언을 고소하려면 모욕과 명예훼손죄에 해당해야만 한다. 나를 향한 욕설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고소각’인지 아닌지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고소장을 접수시키더라도 각하되기 일쑤다. 학교 인권센터에 신고하려고 해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교직원은 접근할 수 없어서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고 가해자를 찾으려면 경찰 신고를 통해야만 한단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해도 비슷한 이유로 게시글 삭제 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혐오발언에 대응할 근거가 없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렇다면 소수자를 악의적으로 몰아내는 이 혐오에 우리는 계속 죽어나가야 한다는 소리일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혐오발언이 무엇이고 왜 문제인지를 설명할 공적인 언어를 갖는 일이다. 한편으로 지금까지 마치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혐오발언과 그 근간이 되는 차별의 문제를 공적인 문제로 재사유하라는 요구이다. 많은 이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이미 혐오발언이 어떻게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지 알고 있다. 또한 혐오발언이 단순히 한 개인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해악으로 이어진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혐오발언은 차별에서 시작해 차별을 만드는 악순환의 중심에 있다. 차별이 이어지고 강화될수록 이 사회가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한 공간이라는 믿음이 깨지고 공공선이 파괴된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혐오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혐오발언은 공론장에 소수자가 출입하는 것 자체를 막는다.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공론장, 누군가의 발언을 막는 공론장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붕괴이다.
차별금지법은 혐오발언이 발생하는 기제인 사회적 차별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법이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우리는 차별과 혐오표현을 정의하고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평등의 가치는 몇몇 개인의 노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차별금지법을 통해 평등을 향한 책임과 의무를 모두의 것으로 다시금 부과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차별금지법은 혐오발언을 발화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방식이 아니라 혐오발언이 발생하는 근간을 변화시키면서 혐오발언을 자연스럽게 예방하는 효과를 낳는다.
차별금지법이 있는 세상에서 혐오발언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자. 일단 학교와 직장에서 반차별·반혐오 교육을 통해 차별적인 상황이나 혐오발언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합의를 만들게 된다. 만약 수업시간에 누군가가 혐오발언을 뱉으면 그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이 혐오발언은 안 된다며 차별과 혐오에 대해 다시 토론을 나눈다. 학생회와 동아리에서는 차별 반대 자치규약을 만들며 평등과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결국 혐오표현을 예방하거나 혐오표현에 대응하는 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처벌 규정이나 가해자를 찾아내는 알고리즘보다도 혐오와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기반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세상에는 분명 평등하고 다양한 공론장이 등장하지 않을까? 모두가 출입할 수 있는 공론장에서 나눌 평등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 우리를 더 나은 어딘가로 데려갈 것이다.
윤김진서
비혼. 오타쿠 퀴어 페미니스트 .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에서 수상한 작당을 모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