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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 순간] 엄마의 서울은 매일 같지만 매일 달랐습니다

등록 2022-05-06 04:59수정 2022-05-06 18:24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어머니의 6년
6년째, 광화문광장과 청와대 분수가 전부였던
엄마의 서울은 매일 같지만 매일 달랐습니다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 오전 11시 어김없이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허재용씨의 어머니 이영문씨가 커다란 팻말을 펼치고 선다. 어느 날은 혼자, 어느 날은 연대 온 시민들과 함께. 4월부터 한 달여 동안의 시위를 기록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 오전 11시 어김없이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허재용씨의 어머니 이영문씨가 커다란 팻말을 펼치고 선다. 어느 날은 혼자, 어느 날은 연대 온 시민들과 함께. 4월부터 한 달여 동안의 시위를 기록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청와대에 구경 오는 관광객들을 보면 부럽네요. 불러줄 사람은 없어도 가야 할 곳은 있기에 시간만 되면 나와야 한다는 압박감, 희망을 걸고 기대를 하고 청와대 분수대 앞을 축 처진 어깨로 허구한 날 드나드는 것도 신물이 나는데, 저 사람들은 근심걱정이 없어 보여 부럽습니다.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요?(2022년 3월7일)
지나치며 묻는 사람들 얼마나 받았냐고. 내 일 아니라고 남의 자식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2022년 2월25일)
많이 춥네요. 이렇게 다섯번째 겨울을 길바닥에서 보내며 저 하늘을 바라보니, 호의호식 누리며 날아다니는 저 요란한 저 헬기 속에선 허울 좋은 민원 1호! 5년 전 약속은 까맣게 잊으셨겠지… 아마도, 민원 1호라 해서 모르는 사람들은 해결됐을 거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다가 이제 화가 치밀어 올라 열받으니 추위도 도망가네요!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한없이 비참하고 처량하네요.(2022년 1월11일)
오늘은 외로이 혼자서 피케팅할 생각 하고 분수대 앞을 일찌감치 나갔었지요. 그런데 생각도 못했던 서의윤 쌤이 나타나셔서 건강식품을 한보따리 갖다주시며 어머니가 건강해야 울 아들이 좋아할 거라며 잘 챙겨 드시고 건강하라고… 자식 앞세운 죄 많은 어미가 무슨 낯으로 건강해야 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고맙습니다….(2021년 10월19일)
이영문씨가 분수대에 걸터 앉아 있다. 1시간을 꼬박 서 있는 건 일흔이 넘은 이씨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백소아 기자
이영문씨가 분수대에 걸터 앉아 있다. 1시간을 꼬박 서 있는 건 일흔이 넘은 이씨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백소아 기자

일흔이 넘은 엄마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그날그날의 울분, 서러움, 고마움이 담긴 글로 빼곡했다. 2017년 3월 침몰된 스텔라데이지호의 항해사인 허재용씨의 어머니 이영문씨는 오늘도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참사 뒤 3년 동안 광화문광장에서 심해 수색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해오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2년 전 장소를 이곳으로 옮겼다. 스텔라데이지호는 2017년 3월31일 브라질에서 철광석 26만톤을 싣고 중국으로 항해하던 중 남대서양에서 침몰했다. 이 참사로 한국인 8명을 포함해 22명이 실종됐다. 침몰 2년 만에 1차 심해 수색을 실시했지만 블랙박스만 회수했다. 그나마 인양한 블랙박스도 훼손돼 아직까지도 침몰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폐선해야 할 고물배를 땜질해 운항한 폴라리스쉬핑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로 거액의 보험금을 챙겼고 회사 관계자 중 누구 하나 처벌받지 않았다. 제대로 된 침몰 원인 규명을 위해 2차 심해 수색이 필요했지만 기획재정부는 3년 연속 예산을 삭감했다. 문재인 정부의 ‘1호 민원’인 스텔라데이지호의 진실은 여전히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다. 정부에 대한 큰 기대만큼 실망 또한 컸다.

엄마는 혼자 있기보다 시민들이 연대해줘 함께한 날이 더 많았다. 그 또한 사회 곳곳에서 비슷한 슬픔을 겪는 이들을 찾아가 위로해줬다. “혼자면 진짜 지루하고 힘들어요. 육체적으로 힘들어서보다 심적으로…. 혼자 있으면 별의별 생각을 다 하잖아요. 혼자 앉아 자꾸 눈물 흘리고 그러는데,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버틴 거죠. 의지도 많이 됐죠. 고마운 분들이 많아요.”

이영문씨가 청와대 들머리에서 팻말을 챙기고 있다. 청와대 분수대 한 켠에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팻말과 간단한 소지품을 놓는다. 백소아 기자
이영문씨가 청와대 들머리에서 팻말을 챙기고 있다. 청와대 분수대 한 켠에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팻말과 간단한 소지품을 놓는다. 백소아 기자

강원도에서 태어나 삼남매를 키운 엄마에게 서울은 ‘광화문광장, 정부청사, 국회, 청와대’가 전부다. 6년째 광화문광장과 청와대 분수대를 오갔지만, 경복궁 구경 한번 못 해봤다. 이제는 엄마의 서울에 ‘용산’이 생긴다. “사람들 하는 말이 거기가 큰 도로고 1인 시위 할 만한 데가 마땅치 않다고 해서. 내가 이걸 다 들고 갈 수도 없고, 들고 올 수도 없고, 맡길 데도 없고. 어떻게 확보 좀 해놓고 가기로 했어요. 내가 아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이것만이라도… 접으면 또 시민들에게 ‘포기했나’라는 그런 이미지를 줄까봐. 우리는 절대 포기를 못 해요.” 주황색 갑옷 위 자신의 몸보다 큰 팻말을 둘러멘 엄마는 생전 처음 가보는 곳으로 발을 내딛는다.

20일 이영문씨가 팻말가방을 어깨에 메고 1인 시위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큰 팻말이 들어간 천가방은 이씨가 직접 손바느질을 해 만들었다. 백소아 기자
20일 이영문씨가 팻말가방을 어깨에 메고 1인 시위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큰 팻말이 들어간 천가방은 이씨가 직접 손바느질을 해 만들었다. 백소아 기자

2022년 5월6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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