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 지난해 10월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8개월여에 걸친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 수사 끝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검찰총장 재직 시절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을 맡았던 손준성 검사를 재판에 넘겼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손 검사와 공범관계가 인정됐으나, 범행 당시 공수처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 신분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검찰로 기소 판단을 넘겼다.
공수처는 고발사주 의혹 핵심인 고발장 작성자와 작성 목적 등은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총장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왜 이런 행위를 했는지도 규명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고발사주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윤 당선자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등은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공수처는 4일 고발사주 의혹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손준성 검사를 공직선거법 위반, 공무상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손 검사와 김 의원은 범여권 인사인 최강욱· 황희석 등이 입후보한 21대 총선에 부정적 여론 형성 등 영향을 미치게 할 것을 공모”했으며, 이를 위해 “최강욱 의원 등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고발장 및 실명 판결문 등을 전달하고, 김 의원은 손 검사에게 받은 고발장을 당시 미래통합당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또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손 검사가 김 의원에게 고발장과 실명 판결문 등을 전송하고 김 의원이 조성은 당시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에게 순차 전달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공수처는 이런 수사 결과 등을 종합한 뒤 “손 검사와 김 의원이 공모하여 고발장을 미래통합당에 제공함으로써 검찰에 고발하도록 하거나, 고발장 등을 활용해 검찰총장과 그의 가족, 검찰 조직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마하고 최강욱 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고발장 등이 손 검사와 김 의원을 거쳐 당시 미래통합당으로 전달된 과정이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해 “수사정보를 총괄하는 검사로서 범죄 혐의와 관련된 수사정보 등이 담긴 고발장을 입수하는 경우 이를 직무상 누설하지 않을 의무가 있음에도 고발장을 김 의원에게 전송”했다며 손 검사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도 인정했다. 그 밖에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공무원에게 지시해 열람·수집한 <채널에이(A)> 기자 강요미수 의혹 사건 제보자의 실명 판결문을 김 의원에게 전송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을 위반한 혐의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수처는 손 검사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는 무혐의 처분했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 등에게 고발장 작성을 지시한 혐의는 증거가 불충분하고, 실명 판결문 출력 등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지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공수처는 김웅 의원에 대해서는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손 검사와의 공모 관계가 인정되나, 공수처법의 기소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검찰에 이첩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고발장을 미래통합당에 전달할 당시 총선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자로 민간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고위공직자에 해당하지 않아 직접 기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당선자와 한동훈 후보자는 무혐의 처분했다. 윤 당선자는 지난해 9월 이 사건을 두고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대검찰청 공안부장 출신으로 고발장을 검찰에 접수하는 과정에 관여한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 당시 대검 대변인으로 손 검사 등과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관련 논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권순정 검사(현 한동훈 후보자 청문회준비단 공보검사),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에 있던 ㅅ검사와 ㅇ검사도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김 의원을 통해 미래통합당에 전달한 고발장이 작성된 경위와 이를 지시한 ‘윗선’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밝혀내지 못하며 수사력 한계를 드러냈다. 공수처는 다만 윤 당선자의 배우자 김건희씨에 대해서는 “일부 혐의는 공수처법상 수사대상 범죄에 해당하지 않아 검찰로 이첩했다”고 밝혔다.
앞서 공수처 자문기구인 공소심의위원회는 지난달 19일 이 사건 핵심 피의자인 손 검사와 김 의원에 대해 불기소를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공수처는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유죄 입증이 가능하다고 보고, 보름 남짓 법리검토 끝에 손 검사를 재판에 넘기기로 했다. 공수처는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앞으로도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하여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끼치는 고위공직자범죄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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