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대통령 취임식을 국회 안에서 한다면서 국회 앞 농성장을 자진 철거하라는 말을 듣고 저는 정말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게 무슨 88올림픽 때 거리 정화한다는 소리인가요. 저희는 치운다고 치워지는 존재가 아닙니다.(이진영 사단법인 양천마을 이사)”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식을 일주일 앞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건너편 국회 정문(국회 2문) 앞에서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가 전날 국회사무처로부터 대통령 취임식 전에 농성장을 자진 철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차제연은 기자회견에서 “이곳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이들 뒤에선 요란한 망치 소리와 함께 대통령 취임식 방송 중계 부스가 설치되고 있었다.
인권활동가인 이종걸 차제연 공동대표(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활동가)와 미류 책임 집행위원(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은 지난달 11일부터 4월 임시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지난 2일부터 국회 앞에서 일일 동조 단식을 하고 있다. 단식농성 이후에도 국회의 차별금지법 논의는 좀처럼 진전이 없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전체회의에서 차별금지법 입법 공청회 계획서를 의결했지만, 개최 일시 등은 여야 간사 협의로 정하기로 했다.
기자회견에 나선 활동가들은 국회사무처 쪽의 농성장 철거 요청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로 단식 23일째인 이종걸 공동대표는 “국회 앞에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자리를 대통령 취임식이라는 이유로 철거해야 한다는 건 차별의 현실을 지우고자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권지웅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도 “국회라는 장소는 단순히 넓은 공터가 아니라 시민들의 처절한 요구가 쌓여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취임식을 한다는 것은 이 갈등과 요구를 마주하겠다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에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미류 집행위원은 “4월 국회 한 달 동안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가져올 위험에 맞선다면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기소 분리 법안)을 추진했다”며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서는) 국민의힘과의 협의를 핑계 대고 있는데, 오는 6월부터는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이 맡기로 했다. 영영 국민의힘 핑계 대면서 이 법 제정을 안 하겠다는 거냐”라고 했다.
한편 국회사무처는 철거를 통보한 것이 아니라 철거에 협조해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사무처 의회경호담당관실 관계자는 “대통령 취임식은 외빈들도 오는 공식적 행사인데 (농성장이) 좋게 보이진 않기 때문에 경찰과 구청, 대통령 경호처와 협의해 취임식 당일이라도 철거해달라는 협조 요청을 한 것”이라며 “취임식을 치르고 나서 다시 농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사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쪽에 구두로 전달했다”고 했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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