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하리수씨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주최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트랜스젠더 방송인 하리수씨,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 공동대표 등 사회 각계인사들이 28일 국회에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위한 비상시국회의’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상시국선언에는 하씨와 박 대표 외에도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최영애 전 국가인권위 위원장, 함세웅·문정현 신부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총 813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에서 “4월 임시국회는 거대양당의 정쟁으로 종료됐다. 지방선거 전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5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현장발언에 나선 하씨는 “90년대 중반 때 다리를 다쳐서 6개월 정도 휠체어를 타고 목발을 짚고 생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택시가 그냥 지나가고, 버스를 타기도 어려워서 버스정거장 다섯개를 매일 목발을 짚고 걸어 다녔다. 또 첫 번째 택시를 타는 손님이 여자라면 구시렁대면서 (택시를) 안 태워주는 분들도 많았다”며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로 살면서 겪었던 차별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어 하씨는 “최초의 트랜스젠더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방송에서 당했던 차별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앞에서는 굉장히 당당했고 유쾌한 삶을 살았지만 뒤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날도 많았다”고도 했다. 그는 “내가 행동했기 때문에, 앞에 나섰기 때문에 제 가족들이 상처를 받고, 모든 것들이 다 비수로 돌아왔기 때문에 활동 이외에 집에 가면 입을 열지 않았다”며 “차별에 제가 대처하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국회는 구체적으로 하위법령으로 장애인을 차별하는 법 제도를 개선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속적으로 방기하고 있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구조적으로 방치하고 있다”며 “우리 모두의 존엄성을 쟁취하는 응당한 시작은 바로 차별금지법 제정”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15년을 외치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지금 당장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영애 전 국가인권위원장은 “예전에 성폭력특별법을 만들 때, 호주제 폐지를 원할 때 국회와 정치인들은 ‘이 법이 만들어지면 사회는 굉장히 혼란에 빠질 것’, ‘무르익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며 “여전히 ‘차별금지법에 대해 사회적 합의 수준이 이르지 않았다’, ‘조급하다’는 것이 저는 너무나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회가 차별금지법을 이번에 만들어내지 못하면 향후 또 15년이 걸릴지 모른다는 절망적인 생각도 든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에 꼭 제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11일부터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도 “우리 사회는 이미 평등에 대한 감각이 쌓이고 있다”며 “우리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번 봄에 꼭 확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별·연령·인종·장애·종교·성적지향·학력 등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은 지난 2007년 처음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사회적 합의 등을 이유로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7일 차별금지법 공청회 실시를 위한 계획서를 채택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비상시국선언’에 참석한 개인과 각 단체 대표들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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