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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 순간]울퉁불퉁 자갈길 험난해도… 꽃내음 젖은 ‘반나절의 행복’

등록 2022-04-22 04:59수정 2022-04-22 08:56

질라라비 장애인 야학 학생들 꽃나들이
19일 오후 대구광역시 달성군 송해공원에 봄소풍을 나온 질라라비 장애인 야학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오랜만에 봄정취를 느끼고 있다. 대구/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9일 오후 대구광역시 달성군 송해공원에 봄소풍을 나온 질라라비 장애인 야학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오랜만에 봄정취를 느끼고 있다. 대구/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방 넘실대는 초록에 울긋불긋 활짝 핀 꽃과 파란 하늘에 낯을 간질이는 샛바람까지.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인 지난 19일 한 폭의 그림 같은 대구 달성군 옥연지 송해공원으로 질라라비 장애인 야학 학생들이 오랜만에 꽃구경에 나섰다. 하지만 이들의 봄나들이 배경음악은 그 흔한 ‘벚꽃 엔딩’이 아니라 전동휠체어 바퀴 사이를 쉴 새 없이 요동치는 자갈 소리다. 편하게 산책하라고 만들어 놓은 둘레길이 전동차를 탄 이들에게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또한 제대로 된 장애인 화장실은 찾아볼 수도 없었고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식당에는 그나마 턱은 없었으나 전동차가 들어가기에는 입구가 좁았다. 반나절짜리 나들이에도 그들은 엄혹한 현실을 다시 마주해야 했다.

질라라비 장애인 야학 학생들이 송해기념관에서 전시를 둘러본 뒤 노래체험대를 써보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대구/백소아 기자
질라라비 장애인 야학 학생들이 송해기념관에서 전시를 둘러본 뒤 노래체험대를 써보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대구/백소아 기자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지만 복도가 좁아서 한 학생이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출입문 턱은 없었으나 전동차가 방향을 틀기엔 복도가 비좁았다. 대구/백소아 기자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지만 복도가 좁아서 한 학생이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출입문 턱은 없었으나 전동차가 방향을 틀기엔 복도가 비좁았다. 대구/백소아 기자

그런데도 간만에 봄 소풍에 나선 선생님과 학생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분주하다. 특히, 2반 학생들은 사진이 잘 나오는 장소마다 멈춰 능숙하게 자세를 잡는다. 나무 데크가 깔린 백세교는 전동차가 이동하기에 훨씬 수월했지만, 관광객들을 위해 튤립밭 한가운데 만든 포토존은 멀찍이서 지켜봐야만 했다. 복지일자리에서 일한다는 김재민씨는 “코로나 이후에 처음으로 나들이 나왔어요. 불편한 것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나오니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식당에서 전동차 때문에 고생했던 조일남씨도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지만, “그래도 바깥 공기 마셔서 좋아요”라고 꽃내음 나는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이날의 마지막 일정은 차와 함께하는 민원서 쓰기다. 몸소 체험해본 장소의 개선사항 등을 적어서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한다.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요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옥연지를 가로 지르는 백세교 위에서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구/백소아 기자
옥연지를 가로 지르는 백세교 위에서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구/백소아 기자

누군가는 그냥 단순한 봄맞이라 여길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사람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맛이고 멋이 아닐까.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작은 행복일 것이다. 내년 봄, 이곳을 찾는 모두에게 자갈길이 아닌 꽃길이 펼쳐지길.

코로나 이후 처음 나들이에 나섰다는 김재민씨(맨 앞)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대구/백소아 기자
코로나 이후 처음 나들이에 나섰다는 김재민씨(맨 앞)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대구/백소아 기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022년 4월22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대구/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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