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무상의료 국민보건서비스(NHS)는 보편적 기본서비스(UBS)의 전형적 형태다. 2021년 12월 맨체스터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센터에서 영국인들이 백신을 맞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REUTERS
보편적 기본서비스(UBS, Universal Basic Services)는 한마디로 “모두에게 사람살이에 필수 서비스를 보장하자”는 개념이다. 사람의 필요를 충족하는 필수적이고 충분한 서비스란 뜻의 기본서비스에 ‘보편적’이란 수식어를 붙인 데는 “지급 능력과 관계없이 모든 시민이 자신의 안전과 기회, 그리고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활동, 즉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이는 기존 공공서비스를 획기적으로 넓혀 현금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보장 시스템을 직접적인 서비스 중심의 모델로 전환하자는 의미다. 그렇다면 보편적 기본서비스가 ‘생태위기 시대의 새로운 복지 비전’인 녹색복지국가를 실현하는 구체적 대안의 하나로 제시되는 이유는 뭘까?
미국 의료, 영국보다 탄소배출 많아
UBS 개념을 처음 제안한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대학(UCL) 소속 글로벌번영연구소 (ISP)의 앤드루 퍼시와 애나 쿠트 신경제재단 수석연구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은 저서 <기본소득을 넘어 보편적 기본서비스로>에서 “환경적 지속가능성은 UBS에 강력한 정당성을 부여한다”면서 “UBS는 지구 위험 한계선 안에서 경제성장 집착을 벗어나 인류의 건강과 복지에 대한 관심으로 전체 경제를 전환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영국과 미국 의료시스템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사해 비교하니 영국의 무상의료 체계인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3%를 직접 배출하는 데 비해, 미국의 민간의료 체계는 8% 배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까닭은 보편적 기본서비스에 해당하는 영국의 의료서비스가 미국 의료서비스보다 전체적으로 효율성이 더 높고, 비용도 더 적게 들어 달러 지출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집단으로 제공되는 (공공) 서비스가 민간서비스보다 생태발자국을 덜 남긴다”며 “더 많은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향한 움직임은 시장 기반 체제보다 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UBS가 지속가능성이란 가치 외에도 평등성과 효율성, 연대성(사회적 유대와 집단정신)을 드높인다고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빈곤층이 의료서비스나 교육 등 필수 서비스를 직접 구매할 때 소득의 3분의 1을 써야 하는데, UBS를 실행하면 빈곤층의 지출을 줄여 소득불평등을 평균 20%로 낮춰준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에도 보편적 기본서비스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기본소득(UBI) 등 여러 복지 대안보다 비교적 미지근하며 답보 상태다. 논의가 아직 무르익지 않은데다, 이 아이디어가 가진 쟁점과 한계 때문일 것이다.
우선 ‘어디까지 보편적으로 보장할 것인가’라는 범위의 문제가 있다. 기본서비스를 처음 제기한 ISP 보고서는 애초 보건의료, 교육, 민주주의, 사법 서비스, 주거, 음식, 교통 등 이른바 7대 서비스를 제안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음식은 무상급식과 식사 배달을, 주거는 임대료와 사회주택 공급 확대를, 교통은 버스나 지하철의 무임승차 등을, 정보는 전화와 인터넷, 텔레비전 수신 등을 가리키며, 이를 모든 시민에게 무료로 제공하자는 안이었다. ISP 보고서는 나중에 이들 7대 서비스에 아동과 노인 장애인 등 돌봄 서비스를 추가했고 식품을 뺐다.
그러고 보니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우리가 접하는 서비스들이다. 다만 UBS는 서비스를 받을 때 자기부담금이 없고, 상황에 따라 약간의 비용만 치른다는 걸 원칙으로 한다. 이 때문에 이들 서비스를 적용하자면 막대한 재원 마련이 불가피하다.
UBS를 주창하는 쪽은 기본서비스가 민영화 등 시장에 의존했던 방식과 달리 ‘공동 필요’를 집단 책임을 통해 공적으로 제공해 거래비용을 낮추고 경쟁으로 인한 중복투자도 방지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존 사회서비스에 견줘 더 효율적이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기존 서비스 체계가 어느 정도 발달했느냐에 따라 추가 재정 소요가 다르겠지만, OECD 국가 기준으로 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4~5% 지출이면 보편적 기본서비스를 실행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특히 UBS는 보편적 기본소득보다 훨씬 돈이 덜 드는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며,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공공서비스 모델은 기본서비스 모델이 타당함을 잘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논점은 기본소득과의 제도 간 경합 또는 관계다. 기본소득이 먼저라는 쪽, UBS가 먼저라는 쪽, 두 제도를 한 쌍으로 보고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 현실적으로 두 제도 동시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견해, 기본소득의 변형적 형태인 참여 소득부터 도입하자는 견해 등등 분분하다. 학계에서도 아직 논의가 초기 단계라 논쟁의 양상을 띠지는 않지만, 무르익는 중이다. 아마도 새 정부가 ‘서비스 복지’를 주창하는 만큼 UBS는 기본소득과 현금복지에 대한 비판이란 맥락에서 향후 자주 언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의 균형
전용호 인천대 교수는 “UBS 아이디어는 사회보장을 소득과 서비스로 종합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는데다, 사회서비스 범위를 의료와 돌봄, 상담에서 정보 접근권까지 포괄해 크게 넓힌다”면서 “특히 사회서비스를 하나의 사회적 권리로 논의할 수 있는 기대를 낳게 한다”고 평가했다.
기실 우리 사회의 도전과 난제를 기존 사회보장제도는 물론 어떤 하나의 대안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특히 기후위기를 비롯한 생태위기를 마주한 상황에서 UBS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 지속가능성을 드높인다는 점에서 검토할 만한 녹색복지국가의 전략이다. 다만 우리 현실에 맞는 한국형 사회서비스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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