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 인천 옹진군 덕적도 서포리해변에서 덕적고 야구부원들이 힘차게 달리고 있다. 덕적도/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박윤호를 반장으로 추천합니다.”
덕적고 3학년 김아진 학생이 운동복에 야구모자를 눌러쓴 남학생을 가리키며 손을 번쩍 들었다. 쑥스러운 듯 까까머리를 긁적이며 박윤호 학생이 친구들 앞에 섰다. “개미처럼 일하겠습니다. 잡초처럼 뽑아 주십시오.” 박윤호 학생의 소견 발표가 끝나자 반 친구들은 깔깔깔 웃었다. 1년 전만 해도 덕적고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덕적고 3학년 학생들이 쉬는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덕적도/박종식 기자
덕적고 3학년 학생들이 둘러앉아 수업을 듣고 있다. 덕적도/박종식 기자
인천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옹진군 덕적도. 육지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는 하루 세 차례 인천을 오가는 배뿐이다.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학생들은 중학교 입학 전 뭍으로 떠나 섬은 점점 더 나이 들어 갔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통합 운영되고 있던 덕적초·중·고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폐교를 고민했다. 2020년 초·중·고 통틀어 학생이 58명에 불과해, 읍면 및 도서 지역 소규모 학교 통폐합 권고 기준인 60명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덕적고 신입생은 1명이었다.
덕적도의 하나뿐인 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김학용 전 동국대 야구부 감독의 제안으로 야구부를 창단해 덕적고를 체육 특성화 학교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김 전 감독은 선수와 지도자 시절 덕적도로 종종 전지훈련을 와 주민들과 인연을 맺었다. 실제 경북 안동 일직중학교가 야구부를 창단한 뒤 학생 수가 늘어 폐교 위기를 극복한 사례도 있었다.
주민들은 ‘야구부 창단 건의서’를 덕적고에 전달하고, 덕적도 바닷모래를 건설자재로 채취하는 업체가 마을에 제공하는 복지 기금 일부를 야구부 창단 기금으로 마련했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해 9월 인천시교육청으로부터 덕적고 야구부 창단 승인을 받았다.
덕적고 야구부원들이 덕적면 종합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덕적도/박종식 기자
포수 강창연 선수가 포구 연습을 하고 있다. 덕적도/박종식 기자
투수 김예찬 선수가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덕적도/박종식 기자
주요한 선수가 타격훈련을 하고 있다. 덕적도/박종식 기자
야구부가 생기자 정말 학생 수가 늘었다. 창단 첫해 야구부원 21명이 전학 왔다. 올해도 야구부 신입생 6명이 입학해 총 27명이 됐고, 더불어 덕적초·중·고 학생 수도 81명으로 늘었다. “인천이 고향이라 야구부가 창단된다는 소식에 전학 오게 됐다”는 박윤호 학생은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장광호 덕적고 야구부 감독은 “학생들의 열의가 대단하다. 전국대회 16강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덕적고 야구부는 창단 뒤 첫 대회인 지난해 11월 인천시장기 야구대회에서 야구 명문 제물포고에 7회까지 대등한 경기를 펼치다 8 대 15로 석패했다.
덕적고 야구부원들이 훈련이 끝난 뒤 코치진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덕적도/박종식 기자
지는 해를 등지고 덕적고 야구부원이 공을 힘차게 던지고 있다. 덕적고/박종식 기자
주민들은 덕적고 야구부원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이번에는 ‘연간 야구부 운영비 3억원 마련’이 목표다. 올해 초 인천시와 인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도 부동산개발업체 넥스플랜이 낸 성금 3천만원을 야구부에 전달했다. 김아진 학생은 “야구부 친구들이 경기에 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했으면 좋겠다”며 “야구부가 유명해져서 앞으로 학교가 더 북적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다 위로 붉게 지는 태양 아래 선수들이 오늘도 힘차게 달리고 있다.
2022년 3월11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덕적도/사진·글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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