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과학, 그로 인해 발전될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도 다양성이 필요하다. 2017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함께하는 과학행진’에서 여성 과학자들이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꼭 처음부터 과학자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과학을 좋아한 이유는 간단했다. 모든 문학작품과 시의 숨은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언어영역은 깊게 공부하기엔 지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반면, 수학은 답이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그 답을 추론하는 과정이 논리적이어서 좋았다. 물론 그렇다고 수학을 썩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공계 대학의 남녀 비율은 좀 독특한 양상을 띤다. 자연대의 여학생 비율이 대략 50%인 것과 달리 공대의 여학생 비율은 21%로 낮다. 그리고 박사과정으로 가면 자연대는 30%, 공대는 13%로 성비가 뚝 떨어진다. 중간에 여학생이 증발하는 셈이다. 한쪽 분야에 남성이 몰린다는 것은 반대로 과학계가 아닌 다른 분야엔 상대적으로 여성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짐을 의미하고, 이는 추후 취업 때 특정 직업군에 특정 성별이 배치되는 기현상을 초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타깝게도 과학계는 여성 연구인력이 계속 부족한 상황이다.
과학계에는 여성 연구자만 없는 것이 아니다. 학회에 참석하였을 때나 혹은 강의를 하면서 휠체어, 안내견, 수어 등을 필요로 하는 동료를 만난 적이 거의 없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학생에게 강의를 한 학기 해본 경험은 있으나, 그 학생이 우리 과의 실험수업을 들은 적은 없다. 건물 자체에 휠체어가 들어올 동선도 존재하지 않는데, 수업을 신청했을 리가 없을 것이다. 외국에선 시각장애가 있는 연구원 안내견의 연구실 이용을 위한 시스템이 고려되고, 휠체어의 동선을 고려하여 가구가 배치되고, 흄(퓸)후드와 실험 벤치의 높낮이가 조절되는 것에 비해 우리는 실험실 세팅 때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용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 연구자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은 보통 실험을 동반한다.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 다양한 실험을 해봄으로써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그러나 이를 배우는 학교에서도 우리는 장애를 가진 친구를 거의 만나지 못하고 졸업을 한다. 이 분야에 진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롯이 학생의 의지인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여자아이는 수학을 못해’ ‘남자아이는 집중력이 약해’라는 오래된 관습처럼 당연히 그런 사람은 오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는 건지, 그래서 정말 오지 못하는 것인지 한번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분야에 처음 입학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장애가 있는 과학기술인을 딱 두명 만나보았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단 두명이라면, 한번쯤 우리에게 또 다른 유리벽이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과학기술 분야가 다양한 곳에 응용될 것이라고 떠들고 있지만, 정작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이들의 배경은 다양하지 않다. 과학을 하는 이들의 배경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은 지금 당장은 문제가 아니지만, 추후엔 정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과학기술 연구가 발전하려면 다양한 현상에 대한 문제인식이 필요하다. 보통 이런 문제인식은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기 쉬운데, 특정한 환경의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면 우리는 다른 환경에서는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놓칠 수 있다.
가령 내가 속한 의약품 연구 분야에서는 지속적으로 나오는 문제가 있다. 대표적으로 성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신약 연구에서는 세포실험이나 혹은 동물실험에서도 대부분 수컷 개체를 사용해왔다. 그 결과, 특정 성별에 맞춰진 의약품이 개발되게 되었고, 실제 1997~2000년 미국에서 부작용으로 중단된 약물 10개 중 8개가 여성에게 더 위험한 부작용이었던 적도 있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부작용 사례 보고 시스템에 의하면 부작용이 보고된 668개의 약물 중 307개에서 성별 부작용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밝혀지며 문제가 제기되었다. 덕분에 늦었지만 이젠 성별에 따른 약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 남녀 성별 연구만 해서는 부족하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이들은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지만, 현재 시스템에서는 제대로 된 진료도 받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즉, 이들을 위한 약물 연구도 새롭게 되어야 한다. 과학에서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배리어 프리(장애인을 포함한 누구나 동등하게 서비스나 제품을 쓰도록 이용 장벽을 없애는 일)를 위해 과학기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비장애인이 배리어 프리를 위해 다양한 문제인식을 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우리는 결국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배리어 프리를 구축하려면 당사자성이 필요하다. 장애를 가진 현장 과학기술인이 존재해야 한다. 당사자성보다 더 큰 동기는 없을 테니 말이다.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지 함께 논의할 사람이 분명 우리에겐 필요하다. 당사자도 없는 마당에 외치는 배리어 프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당사자가 부족하다면, 실험실의 세팅이 바뀔 일도, 실험실에서 이용하는 실험복이며 실험용 장비며 흄후드 등이 사용자 편리성에 맞춰 발전할 수 없다. 전반적인 과학장비 발전을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다양성 충전은 시급하다. 가뜩이나 성인 남성 평균 키에 맞춰진 가구들이라 나와 같은 키 작은 여성 또한 장비 사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다양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다양성을 구축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연구자들이 연구를 함에 있어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모두를 인식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다양한 환경의 사람들이 과학계에 더 많이 올 수 있으려면 그들을 보호할 안전망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차별금지법이 더 나은 과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들에게 과학기술이 함께하고 그로 인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더 나은 과학과, 그로 인해 발전될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윤정인 엄마과학자. 신약 개발 연구를 하는 스타트업의 공동대표입니다. 사실은 유기화학자이고, 엄마과학자로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와 ‘정치하는엄마들’의 활동가로도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