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치마저고리를 입고 댕기 머리를 한 여성이 개최국 국기 게양을 위해 중국의 오성홍기를 옮기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편파판정 논란으로 한국 사회 반중·혐중정서에 불이 붙었다.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중국에 부정적 반응을 쏟아내는 2030세대 여론이 도드라진다. 기성세대는 ‘공정에 민감한 청년세대가 불공정한 중국에 화났다’는 식의 단일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 인식은 지난 10여년 학교와 온라인, 일상생활 등 여러 층위에서 서서히 쌓여온 결과물이다. 해법도 단순할 수는 없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공정담론을 내세워 섣불리 반중·혐중정서에 편승하거나 부추기는 행태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전문가와 청년세대 내부에서 나온다.
<한겨레>는 9일 2030세대 청년 10명을 긴급 인터뷰했다. 공정성 이외에 다양한 요인들이 중국에 대한 인식을 좌우하고 있었다. 중국에 출장을 자주 가는 직장인 이아무개(32)씨는 대학생 때부터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됐다고 했다. 당시 이씨가 다니던 대학은 중국인 관광객이 찾는 주요 명소였다. 학교 앞 가게들이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화장품과 옷가게로 바뀌었다. 중국인들은 수시로 캠퍼스에 들어와 학생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곤 했다고 한다. 이씨는 “열람실에서 맘 놓고 공부조차 못하게 되니 중국인들은 ‘선을 넘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인식이 생겼다”고 했다.
국내 대학들이 중국인 유학생을 대거 유치하며 캠퍼스 내에서 이들과의 갈등이 잦아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 김광옥(25)씨는 2019년 ‘홍콩 민주화 대자보 훼손’ 사건을 보면서 “중국이 중국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연세대에 다니는 정아무개(22)씨는 “중국인과 기숙사를 함께 썼는데 그들이 자기중심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개별적 경험이나 인상비평에 바탕한 것이지만, 이러한 인식은 시진핑 체제 중국에서 강해진 중화민족주의·애국주의, 신장 위구르·홍콩에서 벌어지는 반인권 행태, 대만을 향한 무력 시위 등으로 흡수되며 ‘반중·혐중’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대학생 이호빈(25)씨는 “중국이 후진타오 시대의 온건 노선에서 시진핑의 ‘중국몽’, 즉 자국 중심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에 젊은층 사이에서 중국 이미지가 무례하고 공격적인 나라로 굳어진 것 같다”고 했다.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박지윤(31)씨는 “중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나는 나의 중국을 너무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중국 청년들의 중화사상에 놀랐다. 국제무대에서 이기적인 중국 정부와, 김치를 ‘파오차이’라며 자기네 문화로 만드는 문화공정을 시도하는 중국인이 내 눈엔 다르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글로벌화한 케이(K)팝·게임 영역도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하는 ‘플랫폼’이 됐다. 이아무개(29)씨는 좋아하는 케이팝 그룹에서 중국 멤버가 인기를 얻은 뒤 자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중국인은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많은 중국 출신 아이돌 가수가 유명세는 한국에서 얻어놓고, 자국으로 돌아간 뒤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에스엔에스 글을 올리는 걸 보면서 중국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대학생 서성준(25)씨는 “리그 오브 레전드(온라인 게임)를 하다보면 중국 이용자들이 트롤짓(게임에서 팀원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위)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립대 하남석 중국어문화학과 교수가 현대중국학회 국제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한국 청년세대의 온라인 반중 정서의 현황’을 보면, 2018년 한국 청년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일본에 대한 호감도 2.83점(5점 만점)보다 낮은 2.14점이었다. 중국 비호감의 이유로는 ‘(교양 없는) 중국인’(48.2%), ‘독재와 인권탄압’(21.9%)이 많았다. 현대중국학회 학회장인 원동욱 동아대 국제학부 교수는 “사드 사태 이후 중국의 보복 행위부터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 등 인권 문제, ‘우한폐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던 팬데믹, 김치와 한복을 놓고 벌어진 중국 청년 누리꾼 행위 등이 증폭되면서 청년세대들이 유독 극심한 반중 정서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다만 정치권이 청년층 반중정서에 편승해 해법 제시는 없이 중국 혐오를 부추기고 이용하는 행태에 대해서는 청년들도 경계했다. 프리랜서 김보경(30)씨는 “국민의힘에서는 반중정서를 선거전략 카드로 이용하려 하고, 여당은 이를 악재로 여기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중국 정부와 실제로 마주치는 중국인을 구분할 줄 아는 지성을 지닌 청년들도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여근호(24)씨는 “개별 중국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은 물론, 반중정서를 확대재생산하는 중국과 한국 언론의 행태를 지적했다. 원동욱 교수는 “대선 국면에서 반중정서를 활용해 표를 얻는 방식은 궁극적으로 대중교역에서 얻어온 이익에 심대한 손상을 미칠 수 있다. 정치권, 언론 등이 매우 냉정히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그는 “일반 대중의 감정을 건드릴 것이 아니라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빛과 그림자를 냉정하게 관찰해서 바람직한 관계를 구축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최필수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는 “언론이 양국 네티즌들의 과잉된 의견을 받아쓰며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7일 저녁 트위터에 중국을 비하하는 표현이 인기 검색어로 올라와 있다. 트위터 갈무리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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