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밤 열린 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중국 선수가 추월을 하려는 황대헌(24) 선수의 다리에 손을 대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한국방송>(KBS) 뉴스 화면 갈무리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쇼트트랙 편파 판정 논란 등으로 ‘반중 정서’가 확산되면서, 여야 대선 후보들이 중국에 대한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중장기적인 외교·안보 청사진은 제시하지 않은 채 반중 정서에 편승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대중 관계를 득표 전략으로만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9일 보도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중 관계에 대해 “할 말은 한다”며 “동서 해역에 북한이나 중국 (어선의) 불법은 강력하게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불법 영해 침범인데 그런 건 격침해버려야 한다. 소말리아(어선)가 왔어도 봐줬겠는가. 분명하게 하고 평등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제법은 자위권 차원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불법 조업을 한 민간 어선에 대한 무력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서해 북방한계선 근처에서 많이 이뤄지는데, 중국 어선을 겨냥해 사격을 하면 자칫 북한에 도발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격침 발언’에 대해 “지금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것이지, 군사령관을 뽑는 선거가 아니다”라며 “사이다 뚜껑도 아무 데서나 따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 후보는 논란이 이어지자 “(불법조업 중국 어선을) 현지에서 몰수, 폐기처분을 동시에 실시한다는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7일 쇼트트랙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실격하자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먼저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전날은 베이징겨울올림픽과 관련해 “중국 동네잔치로 변질되고 있다는 아쉬움이 든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편파 판정 논란에 대해 “문제의 핵심은 대한민국 역사를 중국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이라고 비판했다. 판정에 대한 우려를 넘어 이를 정치·외교적 사안에 결부시킨 것이다. 그는 같은 날 공개된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2016년 주한미군의 사드 국내 배치와 관련해 “한국이 중국의 경제 제재에 굴복하며 안보 이익을 희생시켰다”고 규정했고, “중국을 달래기 위해 이른바 ‘3불 입장’(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망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 불추진)을 선언하면서 지나치리만큼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중 정책을 “굴복”이나 “고분고분” 등으로 표현하며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최근 베이징겨울올림픽에서 나타난 중국의 거칠고 안하무인식 애국주의 태도는 국내 반중국 정서를 더욱 키우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유력 대선 주자들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나 경제 의존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반중 정서에 편승한 발언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2019년 이후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교착된 상황에서는 북한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중국이다.
당장 중국 정부도 정치권의 반중 정서 키우기에 “엄중한 우려와 엄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주한중국대사관 대변인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이 문제는 본래 기술적인 문제인 만큼 전문적이고 권위 있는 기관에서 판단해야 한다”며 “그러나 일부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은 중국 정부와 베이징올림픽 전체를 비판하고 반중 정서까지 선동하고 양국 국민 감정을 악화시키고 중국 누리꾼들의 반격을 불렀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주요 대선 후보들이 한-중 관계에서 감정만 앞세울 게 아니라 국익 차원에서 전략을 고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한-중 관계가 악화되면 국익이라는 추상적 표현을 떠나서, 실제로 유무형의 피해자들이 생겨난다”며 “중국에 대해 정당한 비판을 할 수는 있지만, 지나치게 일방적인 비판이 이어지다 보면 정작 중국을 상대할 때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높아지는 혐중국 정서에 영합하는 득표 전략으로, 혐중 포퓰리즘의 일환”이라며 “대선 후보들은 단기적인 정치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인 국익을 고려한 전략적 사고와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철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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