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회원들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유세단 출범 기자회견을 연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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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대학 시절 내가 속했던 동아리가 정식 동아리 인준을 못 받는 일이 있었다. 당시 동아리 구성원들은 1년 넘는 활동 끝에 안전하고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동아리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전체동아리연합회 쪽에 정동아리 신청을 했었다. ‘정식’이 아니었을 뿐 그 어떤 동아리보다 활발하게 활동했는데도 굳이 왜 동아리방이 필요하냐는 질문이 전체동아리대표자 회의에서 나왔다. 정동아리 승인 요건을 맞췄음에도 딱 한표가 모자라 부결됐던 이유는 다름 아닌 성소수자 동아리였기 때문이다. 당시 전체동아리대표자 회의에서 참석자 중 한명이 “(나는) 호모포비아가 아니지만 퀴어에 대해 잘 모른다”고 발언하며 반대표를 행사했던 게 또렷하게 기억난다.
이렇게 공동체로부터 분리·제한·배제되는 경험, 더 나아가 사회가 다양한 시민을 포괄하지 않음으로 인해 기본권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일은 나만 겪었던 게 아니다. 생물학적 성별과 맞지 않는 한복을 입은 사람은 고궁 무료관람 대상에서 제외하는 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 적용에서 배제되는 일, 동일노동을 해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혹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동시간·임금·작업환경·복장에서 차등 대우를 받는 일, 성평등을 옹호하는 페미니스트라는 이유 또는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교육 현장에서 징계받는 일. 상근활동가로 일하며 마주했던 차별 사례들이다.
국회에 발의된 차별금지법(평등법)상의 차별금지 사유 20여개, 여기에 해당되지 않고 단 한번도 차별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한국보다 앞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일반대우평등법)을 시행 중인 독일에서도 응답자의 3분의 1이 법에 열거된 ‘하나 이상의 특성을 근거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조사되었다.(연방차별금지국, 2017 ‘독일에서의 차별 경험’ 보고서) 차별이 소수 몇몇 사람이 아닌 다수가 폭넓게 경험하는 문제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다수의 시민은 성희롱과 괴롭힘이 난무하는 직장에 다녀도, 성차별적인 교육 현장에 있어도 참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정치가 있어야 할 ‘현장’은 바로 이런 곳이다. 안전장치 없이 일하는 노동자와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하는 노동자 중 누가 가장 위험한지 따지는 경쟁적인 시각을 넘어, 각자에게 어떤 위험이 있는지 관점을 옮겨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 누가 대통령이 되든 다양한 위치에 놓인 이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지원이 무엇인지 대안을 만들도록 책임을 부과하는 장치가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2007년부터 사회 각 분야에서 평등사회를 향한 요구가 줄기차게 이어졌고,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져왔다. 침묵과 무시, 혹은 철 지난 찬반 구도로 민의를 왜곡해서 받아들인 건 다름 아닌 정치권이었다. 주요 대선 후보들도 차별 해소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자신이 구현해야 할 필수적인 국정과제로 차별금지법을 누락하고 있다. 사실상 ‘어떻게’ 차별 없는 사회를 구현할지 대책이 없는 셈이다. 시민의 범주와 권리를 넓혀나가길 포기한 정치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2020년 3월 기준, 보수개신교가 주축이 된 혐오세력의 반대 등을 이유로 광역지자체 인권조례의 무산·개악·폐지가 33개 조례에서 43번이나 발생하였다.(비온뒤무지개재단, ‘성소수자 혐오에 따른 인권정책의 무력화: 인권조례를 중심으로’ 연구보고서) 국가 인권 정책 차원에서도 심각한 후퇴가 진행 중에 있다는 반증이다.
인권이 방치되고 불합리한 차별이 공기처럼 당연한 사회 속에서 시민들은 각자의 경험을 차별이라고 명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차별의 문제 제기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사회와 제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말을 받아안을 제도가 없다 보니 해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당사자가 증언을 위해 내야 할 용기도 상당하다. 각자도생이 해법 아닌 해법인 셈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개인에게 맡겨두는 대신 ‘평등의 약속’이 반드시 필요하다. 차별은 기호의 문제가 아닌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누적된 불평등 구조에서 기인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권리의 주체인 사람의 ‘얼굴’을 누구로 상상하는지, ‘진정한’ 소수자의 기준은 누가 강제하는지, 그 기준과 자격, 전제를 질문하는 절차를 거쳐 더 많은 시민이 사회에 포함될 수 있다.
시민들은 팬데믹을 거치며 차별이 심각한 문제라고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국가인권위원회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국회 국민동의청원 10만 행동, 평등길1110 도보행진, 두달간 진행된 국회 앞 농성, 그리고 서울시 25개 자치구를 순회하는 차별금지법 유세단 활동을 통해 시민들의 입장이 변화했음을 체감한다. 과거에는 ‘동성애법 아니냐?’고 묻던 반응이 많았다면, 이젠 정말 궁금해서 ‘이 법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내 삶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 유세단에 다가온다. 지난해 10만 행동 진행 당시에도, 참여 요청을 보내지도 않았던 지인이 ‘청원에 어떻게 참여하냐’며 직접 자기가 들어가 있는 단톡방에서 참여를 조직하고, ‘국회 청원 페이지 어르신이 사용하기에 너무 불편하다’며 또 다른 차별의 문제를 발견해냈다. ‘국민들의 힘’이 되는 정책, ‘더불어 민주적’으로 살아갈 방법을 대선 후보들이 고민하고 있다면 멀리 갈 필요 없다. 15년 전 이미 실현됐어야 하는 미래, 차별금지법이 있다.
대선 후보들은 민생을 해결하겠다, 자살률을 낮추겠다, 사회통합을 이뤄내고 약자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겠다, 아동 친화적이고 여성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외친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 차별에 문제제기 하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나의 권리가 타인의 선의에 종속되지 않는 사회, 피해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내가 나로서 안전할 수 있는 사회, 소수의 용기에 공동체가 응답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동료 시민의 부고보다 ‘올해도 잘 살았다’는 소식을 조금 더 나눌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를 만드는 일, 어떤 대통령이 선출되는지와 상관없이 차별금지법은 시작할 수 있다. 선거는 필연적으로 당락이 좌우되지만, 우리의 삶은 ‘사표’ 처리되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에 멈춰 선 민주주의가 일상에까지 도달하도록 통로가 되어줄 차별금지법, 이 법이 있는 나라가 먼저여야 한다.
장길완.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구성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여성, 아동, 소수자 인권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상근활동가. 올해 ‘21대 국회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환영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