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건설노동조합 소속 현장 노동자들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공기단축이 부르는 아파트 건설현장 중노동과 부실공사 증언대회'에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철근 작업이 끝나야 타 공정을 한다고 보통 새벽 4시부터 작업을 시작합니다. 새벽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장에서 헤드 랜턴을 끼고 일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노동인지 묻고 싶습니다. 하루씩만 늦게 하면 되는 일을 하루라도 일찍 끝내야 한 푼이라도 더 번다는 회사의 논리에 노동자들은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철근 노동자 김상윤씨)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은 25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참사로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며 “공사기간 단축은 재하청 구조, 안전 관리 부실과 맞물려 반복적으로 재해를 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노조가 공개한 화정아이파크 타설일지를 보면, 화정아이파크는 3층부터 38층까지 평균 7∼8일에 한 층꼴로 타설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문제가 제기된 고층부뿐 아니라 저층부도 6층이 지난해 3월25일 타설되고 7층이 일주일 뒤인 4월2일 타설되는 식이다. 13층은 5월17일에, 14층은 불과 5일 뒤인 5월22일 타설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에이치디시(HDC)현대산업개발이 붕괴사고 직후 “12~18일 동안 충분한 양생 기간을 거쳤다”고 해명한 것과 배치된다.
노조는 “다른 건설현장에서도 충분한 양생 기간을 거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강한수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은 “건설노동자는 일주일 이내에 건물이 한 층씩 올라간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현대산업개발이 새빨간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알루미늄 폼 노동자 김훈씨는 “일이 빨리 진행되면 4일에 한 층이 올라가고, 평균 5~6일에 한 층씩 타설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공사기간 단축이 부실시공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형틀 노동자 윤승재씨는 “작은 현장에서는 콘크리트에 크랙(균열)이 생기면 망치로 긁는다”며 “그래도 크랙이 없어지지 않으면 콘크리트에 물을 섞은 것을 그냥 부어버린다. 건설사 이득을 위해 감리들조차 알고 있으면서 관행적으로 묵인하는 게 현실”이라 고 말했다 .
건설업계에 만연한 재하도급 등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해체정리 노동자 이승환씨는 “하도급을 주고 또 하도급을 주는 게 건설현장 현실”이라며 “100에서 시작된 공사비용이 마지막 업체에선 50으로 둔갑한다. 공사 품질이나 노동자 안전이 무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타설 노동자 복기수씨는 “원청에서 타설 전문업체에 하도급을 맡기면 전문업체가 시공해야 하는데, 오야지(하도급 팀장)들을 불러 입찰 뒤 맡긴다. 오야지는 자신도 이윤을 남기기 위해 8∼9명이 해야 하는 일을 비용 절감을 위해 5∼6명만 투입하고, 재료도 적게 쓴다”고 말했다.
이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현장에서 안전 강화를 위한 노력은 느끼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복씨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지만 건설회사들의 안전을 위한 노력은 느끼지 못했다”며 “현장에선 법 시행 첫날 휴가를 주는 방식으로 ‘중대재해처벌법 1호만 피하자’는 꼼수만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공사기간 단축은 높은 노동 강도로도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적정 공사기간은 건설노동자가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와 아파트의 품질을 높인다”며 “적정 공사기간 산정을 위해 건설안전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타설일지.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제공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