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0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공원묘원, 아동학대로 숨진 지 1년이 되는 정인이의 묘. 묘원 한쪽에 추모객들의 인형과 꽃다발이 가득 놓여 있었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경찰이 16개월 입양아 학대 신고 사건(정인이 사건)에서 피해 아동에 대한 보호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재발 방지 대책을 권고했다.
20일 인권위는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피해자의 생명권이 침해되기까지 국가의 보호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경찰청장에게 경찰의 아동학대 방지 및 현장대응 체계 전반에 대해 모니터링하라고 권고했다.
앞서 인권위는 정인이를 피해자로 하는 진정을 지난 1월 접수해 조사해왔다. 해당 진정은 정인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제삼자가 개인 자격으로 접수했다. 진정인들은 “정인이에게 학대 피해가 발생해 지난해 5월과 6월, 9월 세 차례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다. 경찰이 정인이를 구할 수 있었음에도 안일하게 대처해 정인이의 인권이 침해됐고 결국 정인이를 살리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조사 결과 “피진정인들(경찰)은 피해자에 대해 3차례에 걸친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음에도 아동학대 사건의 초동조치, 조사 및 수사, 아동학대 예방과 사후관리 등 전반에 걸쳐 직무상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정인이를 진료한 소아과 의사가 아동학대 정황을 경찰에 직접 신고한 점 등을 들어 “일련의 신고 내용들을 감안하면 피해자에 대한 학대 의심 정황을 중대하게 다룰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피진정인들의 행위는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아동학대 신고 피해아동에 대한 보호조치를 소홀히 한 것으로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피해자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 신체 안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 책임이 있다”고 결론 냈다. 인권위는 “아동학대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임이 방기됐다”며 “아동의 안전과 최우선의 이익을 보장해야 할 우리사회의 사회적 보호체계가 이 사건 피해자에 대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경찰청장에게 “아동학대 방지 및 현장대응 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모니터링 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업무담당 경찰관을 대상으로 직무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또 경찰청장에게 양천서장에 대한 기관경고 및 강서서 담당 경찰관에 대한 주의 조처를 권고했다. 인권위는 “사건 담당 경찰관들이 이 일로 이미 징계 및 주의, 경고 처분을 받은 사실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생후 16개월 영아 정인이는 양부모에게 입양된 지 9개월 만인 지난해 10월13일 머리와 복부 등에 큰 상처를 입은 채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숨졌다. 의료진 등이 3차례 학대 의심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정인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냈다. 부실대응 논란이 일자 경찰은 올해 초 징계위원회를 열어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들에게 중징계를, 양천경찰서장에게 경징계를 내렸다.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살인)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양모 장아무개씨는 지난달 항소심에서 징역 35년을, 아동학대 등 혐의로 기소된 양부 안아무개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권고 대부분 (이미)조처한 내용이다. 모니터링과 직무교육을 하고 있다”며 “관련자를 징계했고, 강서서 담당 경찰관에 대한 주의 조치는 검토 뒤 조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주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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