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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 순간] “사람들이 우리 얘기 들어주면 좋겠어”…기지촌 모진 삶의 증인들이 해설사로

등록 2021-12-17 05:00수정 2021-12-17 08:16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일곱집매
평택 기지촌에 청춘을 보낸 김숙자(왼쪽부터), 김경희, 최영자, 권향자씨. 이들은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일곱집매 해설사이다. 평택/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평택 기지촌에 청춘을 보낸 김숙자(왼쪽부터), 김경희, 최영자, 권향자씨. 이들은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일곱집매 해설사이다. 평택/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일곱집매’가 지난 11월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113-195에 문을 열었다. 좁은 골목길과 담장 낮은 집들이 이어진 작은 동네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기지인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1㎞ 남짓 떨어졌다. ‘일곱집매’는 일곱 집이 자매처럼 다정하게 살았다고 해서 불린 옛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김숙자 할머니가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일곱집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할머니는 해설사를 시작하며 웃음을 되찾았다. 평택/백소아 기자
김숙자 할머니가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일곱집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할머니는 해설사를 시작하며 웃음을 되찾았다. 평택/백소아 기자

한국전쟁 뒤 1961년 미군 부대가 주둔하면서 안정리의 기지촌화도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전쟁과 가난에 떠밀려 기지촌 클럽에 발을 들인 여성들은 빚과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주위의 차가운 시선으로 심신은 점점 피폐해갔다. 나라는 그들을 달러벌이 역군이라 추켜세우며 기지촌 안 성매매를 허용했고 주기적으로 성병을 검사하며 직접 관여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지금까지도 사회의 차별, 가족의 외면 등으로 이들은 여전히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최영자 할머니가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일곱집매 전시관 `평택_평화로운 호수'에 서 있다. 최영자 할머니는 어렸을 적 계모에게 당한 학대와 기지촌 안에서 당한 왕따로 밖에 잘 나오지 않았다. 박물관 해설사로 나서며 할머니는 세상으로 나왔다. 평택/백소아 기자
최영자 할머니가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일곱집매 전시관 `평택_평화로운 호수'에 서 있다. 최영자 할머니는 어렸을 적 계모에게 당한 학대와 기지촌 안에서 당한 왕따로 밖에 잘 나오지 않았다. 박물관 해설사로 나서며 할머니는 세상으로 나왔다. 평택/백소아 기자

3500만원 전세방에 사는 조은자 할머니가 9000만원을 기부했다. 기지촌 노인 여성을 돌봐왔던 햇살사회복지회와 한국해비타트, 경기문화재단의 도움도 컸다. 외롭게 떠나간 기지촌 여성을 기억하고 살아 계신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한 박물관은 들어섰다. 기지촌 여성들의 역사와 기록, 물품 등을 전시하는 상설전시관인 ‘평택’, 그들의 공간을 재현한 ‘빈방 있음’과 출입금지지역이라는 의미를 담은 기획전시관인 ‘오프리밋’ 등으로 구성됐다.

김경희 할머니가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일곱집매 전시관 `오프리밋'에서 주용성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평택/백소아 기자
김경희 할머니가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일곱집매 전시관 `오프리밋'에서 주용성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평택/백소아 기자

권향자, 김숙자, 김경희, 최영자 네분의 할머니는 박물관 해설사로 나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숙자 할머니는 “박물관이 내게 생동감을 줬다”며 설렘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말주변이 없다고 손사래 치는 김경희 할머니는 “누구는 오고 누구는 못 오는 곳이 아니라, 누구라도 오면 환영한다”고 말했다. 계모에게 당한 학대와 기지촌에서 겪었던 왕따로 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최영자 할머니는 바깥출입이 거의 없었으나, 해설사로 나서며 세상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

권향자 할머니가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일곱집매 전시관 `빈방있음'에 서있다. 전시관 안에 물건들 중 일부는 할머니들이 직접 보관해 온 물건들이다. 평택/백소아
권향자 할머니가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일곱집매 전시관 `빈방있음'에 서있다. 전시관 안에 물건들 중 일부는 할머니들이 직접 보관해 온 물건들이다. 평택/백소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해설사로 나선 권향자 할머니는 “먼젓번에 학교에서 아이들이 와서도 깜짝 놀라더라고. 모르니까. 믿지를 않아. 안 믿어. 안 믿더라고. 박물관 들어가서 보고 얘기를 듣더니 끄덕끄덕하더라고. 이렇게 해놓으면 사람들이 와서 보고 알겠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평택/사진·글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21년 12월 17일자<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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