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과 수험생이 2022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 생명과학Ⅱ 20번 문제 출제오류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면서 정답이 적힌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대입 당락의 열쇠를 쥐게 된 ‘문과 출신’ 재판부는 수능 시험문제지를 놓고 ‘열공’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문제 오류 여부를 판단할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지난 9일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정답 결정 처분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수험생 소송인단이 신청한 집행정지를 우선 인용했다. 10일 오후에는 본안사건의 첫 번째 변론기일을 연다. 문제 오류를 주장하는 소송인단과 ‘문제 없다’는 평가원은 법정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각종 자료를 제출하고, 행정6부 판사 3명은 문제에 나온 ‘하디·바인베르크 평형’ 개념 등을 파악한 뒤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판결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은 일정 조건을 만족하는 유전자풀에서는 세대를 거듭해도 우성유전자와 열성유전자의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유전학 개념이다. 논란을 빚은 생명과학Ⅱ 20번 문제는 집단Ⅰ과 집단Ⅱ 중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을 만족시키는 ‘멘델 집단’을 찾아내고 수학적 계산을 통해 <보기>에서 옳은 내용을 모두 고르는 문제다. 그런데 문제를 바탕으로 모든 유전자형의 개체 수를 꼼꼼히 계산해볼 경우 특정 집단의 개체 수가 마이너스(-)라는 계산이 나온다는 점에서 문제 오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평가원은 지난 29일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준거로 학업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고 판단했다”며 ‘이상 없음’으로 판정했다.
과거 수능 정답 결정 취소 소송을 심리한 재판부는 학회 등 전문가 의견, 교육계 의견 등을 참고해 판결을 내린 바 있다.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출제오류 소송에서 2014년 10월 1심을 뒤집고 수험생의 손을 들어줬던 서울고법은 각 출판사의 세계지리 교과서, 전국지리교사모임의 의견, 언론 기사, 통계청 통계, 세계은행 통계 등을 바탕으로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의 규모가 크다’는 선택지를 맞는 선택지라고 출제한 문항에 대해 “문제 오류”라고 판결했다.
2016학년도 수능 국어영역에선 ‘애벌랜치 광다이오드’ 지문의 정답인 ‘애벌랜치 광다이오드의 흡수층에서 전자-양공 쌍이 발생하려면 광자가 입사되어야 한다’는 선택지에 대해 소송이 제기됐다. 일부 수험생은 “지문에는 ‘~할 수 있다’인데 선택지에는 ‘~이어야 한다’고 되어 있어 개념이 다르다”며 문제 오류라고 주장했다. 이때도 1심 재판부는 수능 시험지를 붙잡고 검토한 끝에 “지문에 기초한 전자-양공 쌍의 생성원리는 전자-양공 쌍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자가 입사돼야 한다는 것이다. 평가원이 정답으로 발표한 선택지 외에는 지문의 내용에 명백하게 어긋난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한 법관은 “판사들은 업무 특성상 (복잡한) 원자력발전소 관련 소송 같은 걸 맡기도 한다. 사건과 관련된 개념을 공부한 뒤 판결한다. 그게 판사의 일”이라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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