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회 대표가 지난해 5월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전두환 계엄사령부의 치밀한 보도검열과 기자해직 등 언론 탄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보도 검열, 제작거부에 대한 폐간, 저항언론인 1천여명 해직, 언론사통폐합…. 정부수립 이후 전두환은 가장 악랄하게 언론을 탄압했고, 아직도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폭력적으로 언론을 탄압한 뒤 결국 사과 않고 떠나 씁쓸한 마음이다.”
‘전두환’이라는 이름을 듣자 마자 고승우(74)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의 시계는 40여년 전으로 돌아갔다. 1980년 5월, 한국 언론은 광주의 참상을 목도하고도 진실이 담긴 기사를 내보낼 수 없었다. 민주화·학생운동, 사회운동 관련 보도를 일체 할 수 없었다. 당시 <합동통신>(옛 <연합뉴스>) 사회부 소속으로 서울시청 출입기자였던 고 대표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매일 계엄사령부 검열관에게 검열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 대표는 “외신은 활발하게 보도하는데 검열이 까다로워지면서 기자들이 분노하고 굉장히 자괴감을 느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계엄사 검열에 맞서 한국기자협회 중심으로 제작거부 운동이 펼쳐졌다. 당시 보도 검열 철폐를 요구한 기자협회 집행부는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정부가 직접 정화 대상으로 선정한 298명, 언론사가 직접 선정한 635명이 해직됐다. 1980년 언론 통폐합으로 3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추가로 해직됐다. 고 대표는 그해 8월 쫓겨난 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 몸담았고, 이후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을 맡아 언론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의 언론투쟁은 공식적인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일부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지난 5월 41년 만에 법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국회가 지난 5월21일 해직언론인들을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로 포함하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다.
그러나 이들을 짓밟았던 전씨는 사과 한마디 없이 눈을 감았다. 고 대표는 전씨가 독재와 학살 이외에도 한국 사회에 큰 병폐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는 최근까지도 광주에 대해 왜곡하는 발언을 회고록에 넣고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줬다. 내부 비리를 폭로하는 이들이 갑질로 고통받는 사회 풍토가 굳어지는 데 그가 일조했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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