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 민주화운동사전편찬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 사전이 겨냥하는 대상은 민주화 이후 태어난 세대입니다.”
민주화 운동 사전 편찬위원장을 맡은 서중석(73)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사전 편찬의 취지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서 위원장은 “과거 1970∼80년대 어른들은 민주화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향해 ‘전쟁의 참혹함도 모르면서 시위나 하면 되겠냐’라고 얘기하곤 했다”며 “그렇게 자신의 체험과 연결해 10∼30대를 가르치려고 해선 안 된다고 본다. 이제는 사실과 진실에 바탕을 둔 역사 전달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18일 그간의 연구 성과와 활동을 집대성한 ‘민주화운동 사전’ 편집 작업에 나선다고 밝혔다. 사전은 1960년 4월 혁명부터 1987년 6월 항쟁까지 한국 민주화운동사의 굵직한 사건·인물·단체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를 사전 형식으로 묶고 2022년부터 온라인으로 서비스하는 프로젝트다. 서 위원장을 비롯해 편찬위원들은 지난해 7월부터 17여 차례 회의를 하며 사전에 수록될 사건을 정하고 민주화운동의 기준을 설정하는 등 기초 공사를 벌여왔다.
서 위원장을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나고, 전두환씨가 사망한 다음날인 24일 통화를 통해 사전 편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3일 사망한 전씨에 대해 서 위원장은 “민주화 운동을 짓밟고 광주에서 참혹한 사태를 일으킨 것은 언제까지도 지울 수 없는 역사의 큰 죄인이다. 민주주의와 인본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한 인물이다”고 평가했다. “국가권력을 한때 장악했던 그런 자가 이렇게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건 서글픈 일입니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것의 가장 생생한 예가 아닐까 싶어요. 다시는 전두환 같은 사람들에 의한 쿠데타와 유혈 사태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지 않나 싶습니다.”
얼마 전 전 대통령 노태우씨의 국가장 논쟁과 관련해서 그는 “정부가 신중하지 못한 선택을 했다”며 “노태우는 광주 학살에서도 전두환 다음으로 책임있는 사람이다. 전두환과 구별해서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서중석 민주화운동사전편찬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 위원장은 현대사를 두고 논란이 되는 내용이나 반민주 인사들의 ‘현재’ 역시 사전에서 수록될 수 있다고 했다. 과거의 기록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현재도 논쟁이 이어지는 사안들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편찬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예컨대 전두환에 대한 대법원 판결 등 재판 내용이나 후속 연구들은 광주 항쟁을 이해하는 배경의 한 항목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전 편찬을 준비하며 민주화운동을 어디까지 볼 것이냐가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 하면 ‘반독재 투쟁’을 떠올리지만 서 위원장은 “민주화운동의 범위를 확장해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노동운동은 중앙정보부의 집중 관리를 받으며, 학생운동 못지 않은 감시와 탄압을 받았어요. 권위주의 정권의 억압에 대항해서 일어난 투쟁은 다 민주화운동으로 봐야 합니다.”
서 위원장은 “사실·진실 앞에서는 음해, 중상모략, 망상 이런 것들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걸 기다리고 있다. 우리 사전이 그 중간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