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청각 장애인들이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 3사를 상대로 “차별 없이 영화를 보게 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 항소심에서도 원고 승소 취지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영화관 사업자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필요한 수단을 제공해야 하는 대상’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민사5부(재판장 설범식)는 시각장애인 김아무개씨 등 시각·청각 장애인 4명이 씨지브이(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를 상대로 제기한 차별구제소송에서 25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300석 이상의 좌석 수를 가진 상영관 △복합상영관 내 모든 상영관의 총 좌석 수가 300석이 넘는 경우 1개 이상의 상영관에서 총 상영 횟수의 3%에 해당하는 횟수로 개방형 또는 폐쇄형을 선택해 ‘배리어프리’(장애인의 사회생활을 막는 물리적·심리적 장애물 제거) 영화를 상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개방형이란 영화관에 있는 모든 관객이 음성이나 화면해설을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스크린에 띄우거나 음성을 틀어주는 방식이고, 폐쇄형은 화면해설 수신기기나 자막 수신기를 가진 사람만이 화면해설을 듣고 자막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재판부는 위의 요건에 해당하는 상영관은 2개 이상의 화면해설 수신기기·자막 수신기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씨를 비롯한 이 사건 원고 4명은 ‘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달라’며 2016년 소송을 제기했다. 시청각장애인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면해설(시각장애인)이나 한글자막(청각장애인)이 제공되는 배리어프리 버전 영화를 봐야 하는데, 현재 이들이 원하는 영화를 보기는 쉽지 않다.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시·도별로 1~2곳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적은 데다 상영 날짜와 시간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날 재판부는 복합상영관 사업자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1항에서 규정한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있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봤다. 해당 조항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정보를 동등하게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한국수어, 문자 등 필요한 수단을 제공할 의무가 있는 이들을 규정한 조항이다. 재판부는 “피고에 대해 해당 조항의 수범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피고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시행령에 따라 화면해설이나 자막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인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1심도 “복합상영관들이 장애인인 원고들을 형식상 불리하게 대하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동등하지 않은 영화관람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봐야 하고,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간접차별에 해당한다”며 화면해설 및 자막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날 선고 뒤 원고들의 소송대리인 이주언 변호사(법무법인 두루)는 “(총 상영 횟수의) 3%로 제한을 둔 것은 아쉽다”면서도 “기존에 개방형 배리어프리 영화의 상영 횟수가 (전체의) 0.01%, 0.02%였다는 점에 견주면 3%도 그대로 이행될 경우 분명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복합상영관 쪽은 재판 과정에서 화면해설 및 자막을 제작하는 건 제작사와 배급사라고 주장하며 상영관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복합상영관들은 씨제이이엔엠(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같은 회사 또는 계열사를 통해 제작사와 배급사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피고들도 스스로 자막과 화면해설을 만들어야 한다. 저희도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을 통해 이런 시비가 더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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