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영화관에서 열린 장애인 영화관람 보조기술 시연회에 참석한 청각장애인들이 스마트 안경을 끼고 영화를 보고 있다. 스마트 안경은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했는데, 안경을 쓰고 스크린을 보면 마치 스크린에 자막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시청각 장애인과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장애인의 영화 관람을 둘러싸고 5년째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영화관 체인이 장애인 영화관 접근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국내 장애인의 영화관 접근권은 수년 뒤에나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민사5부(재판장 김형두)는 26일 시각장애인 김아무개(30)씨 등 시청각 장애인 4명이 씨지브이(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3대 멀티플렉스 극장을 상대로 낸 차별구제소송 항소심 조정기일을 열었다. 영화관에 장애인을 위한 영화 관람 보조기기를 구비해야 하는 문제를 두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사건이 조정에 회부된 것이다. 1심 판결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영화관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장비,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제공 장비 등을 갖춰야 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지만, 영화관 쪽은 비용 부담 및 보조장비의 기술표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항소했다.
이 사건 원고인 시청각 장애인들은 보고 싶은 영화를 원하는 영화관, 원하는 시간대에 볼 수 없다는 어려움을 지적해왔다. 이들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화면해설이나 한글자막이 제공되는 무장애(배리어프리) 영화를 봐야 하는데, 무장애 영화 상영관은 시·도별로 1~2곳에 불과한데다 상영 날짜 및 시간, 개봉 영화도 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원고인 김아무개씨는 “1년에 상영하는 몇백편의 영화 중 배리어프리 영화는 소수에 그친다”며 “시간대도 직장인이 가기 힘든 평일 낮, 주말 아침 등으로 제한돼 있어 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방해하지 않고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도록 1개 영화관에 자막이 나오는 스마트안경, 화면해설이 나오는 수신기 등 개인용 보조기기를 갖추고 4개월간 시범운영해보자는 조정안을 냈지만, 영화관들이 비용 부담에 난색을 보이면서 시범운영은 시작도 못한 상태다.
미국·일본 등의 영화관 체인들은 일찌감치 장애인 보조기구를 도입해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원고 쪽 법률대리인인 이주언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미국에선 극장 체인이 장애인을 주요 고객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데, 국내 영화관들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마련할) 법적 의무가 없다고 하고 있다”며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국가에서는 장애인의 편의를 제공하는 쪽으로 앞서가고 있는데, 국내에선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뒷짐만 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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