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 피해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을 살해하고 도주한 30대 남성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스토킹 피해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30대 여성이 옛 연인에게 살해된 가운데, 피해자가 모두 6차례 스토킹 신고를 접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공식 사과하고 ‘스토킹범죄대응개선 티에프(TF)'를 만들어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신변보호 여성 살해 사건’과 관련해 “시스템에 1년간 다섯번 (스토킹 관련) 피해자의 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옛 연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ㄱ씨는 20일 대구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던 피해자 ㄴ씨는 지난해 12월 ㄱ씨를 주거 침입으로 신고했으나. 이내 신고를 취소했다. 서울로 근무지를 옮긴 ㄴ씨는 지난 6월26일 짐을 가지러 왔다며 자신의 집 문 앞에 머문 ㄱ씨를 또 경찰에 신고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이어서 ㄱ씨를 지하철역까지 격리하고 경고장을 발부한 뒤 피해자에게 신변보호에 대해 안내했다”고 밝혔다. ㄴ씨는 지난 7일에 ㄱ씨가 찾아와 힘들다는 취지로 서울에 올라온 뒤 두 번째 신고했고, 이날 경찰은 ㄴ씨를 임시 숙소에 인계하고 신변보호를 시작했다. ㄴ씨는 8일에 주거지에 짐을 가지러 가야 한다며 경찰에 동행을 요청했고, 9일에도 ㄱ씨가 회사 앞에 찾아와 만났다 헤어진 상황이라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날 법원은 ㄱ씨에 대해 100m 이내 접근 금지, 정보통신 이용 접근 금지 등의 잠정 조처를 내렸다.
경찰은 신변보호 이후 12차례 피해자와 통화했고, 지난 18일에도 통화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ㄴ씨는 지난 15일 임시 숙소에서 자택으로 돌아갔고, 20일 경찰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ㄴ씨는 지난 19일 오전 11시30분께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ㄱ씨에게 흉기로 찔렸다. ㄴ씨는 11시29분과 33분 두 차례 스마트워치로 경찰에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경찰이 첫 신고 때 ㄴ씨의 주거지가 아닌 명동으로 출동했다가 11시41분에야 도착하면서 끝내 숨졌다. 경찰 시스템이 스마트워치로 정확한 피해자 위치를 잡지 못하고 명동 기지국만 파악해 오차범위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경찰이 오차범위가 발생하는 스마트워치 위칫값뿐 아니라 피해자의 주거지에도 출동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저희 입장에서 제일 아픈 부분”이라며 “결과론적이지만 직원이 애초에 그런 조처를 했으면 시간이 짧지만, 좀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매뉴얼 상으로는 위칫값에 직원을 보내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경찰은 명동으로 출동 이후에 피해자 주거지와 가까운 중부경찰서에서도 현장 순찰자에게 주거지로 가도록 지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입장문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을 가장 큰 존재 이유로 하는 경찰조직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신 한 분의 소중한 생명을 지켜드리지 못한 부분에 대해 국민의 질책을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며 “고인과 유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일은 경찰이 보다 정교하지 못하고 신속 철저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며 “중부서장 및 외부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스토킹범죄대응개선 티에프(TF)를 만들어 최대한 빠른 시간 내 실효성 있는 대책을 수립, 유사 사례가 재발치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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