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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 순간] 연 4천명 고단한 노동자 품어주는 곳…꿀잠을 지켜주세요

등록 2021-11-19 05:00수정 2021-11-19 10:40

재개발 앞 위기의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 상근활동가, 효성첨단소재 해고노동자, 인권활동가 등이 서울 영등포 신길동 꿀잠 옥상에서 휴대폰 불빛을 밝히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 상근활동가, 효성첨단소재 해고노동자, 인권활동가 등이 서울 영등포 신길동 꿀잠 옥상에서 휴대폰 불빛을 밝히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울산에서 온 효성첨단소재 해고노동자들이 17일 저녁 서울 마포 본사 앞 농성을 마친 뒤 서울 영등포 신길동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 1층 식당 의자에 지친 몸을 기댔다. 기륭전자 해고노동자 박행난(59) 꿀잠 상근활동가는 익숙한 듯 북엇국과 김치찜 등을 만들어 식탁에 차린다. 이른 추위와 무관심한 시민의 눈길이 낯설던 노동자들이 한 숟가락 밥을 국에 말아 입으로 밀어 넣는다. 밥을 벌기 위해 나섰다 밥벌이에서 쫓겨난 노동자의 몸과 마음이 해고된 노동자가 차린 음식으로 위로받는다. 정해정(49) 화학섬유식품노조 효성첨단소재 지회장은 “꿀잠 덕분에 숙식을 해결할 수 있어 큰 힘이 된다”고 마저 남은 밥술을 뜬다.

효성첨단소재 해고노동자들이 꿀잠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효성첨단소재 해고노동자들이 꿀잠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효성첨단소재 해고노동자들이 잠을 청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효성첨단소재 해고노동자들이 잠을 청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사고로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한국마사회의 비리를 폭로하고 세상을 떠난 문중원 기수의 부인 오은주씨 등 고난에 처한 이들의 쉼터 역할을 하던 꿀잠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꿀잠이 위치한 신길2구역은 2009년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됐다. 2020년 3월 재개발조합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재개발사업이 추진돼, 올해 10월 아파트 층수를 높이는 내용이 포함된 정비 계획 변경 조치 계획안을 제출한 상태다. 꿀잠은 구청과 조합에 건물 존치를 요구하는 의견을 제출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김소연(52) 꿀잠 운영위원장은 “조합에서는 존치는 어렵다며 현금청산을 하든, 아파트를 받든 선택을 하라고 하지만 힘들게 마련한 이 공간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꿀잠 1층 식당에서 고구마를 먹고 있다. 박종식 기자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꿀잠 1층 식당에서 고구마를 먹고 있다. 박종식 기자
꿀잠 1층 식당에서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꿀잠 1층 식당에서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꿀잠은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10년 투쟁 뒤, 장기투쟁으로 지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해고노동자가 마음 편히 활동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2015년 처음 제안됐다. 시민 2천여명이 모금에 동참했고, 연인원 1천명이 리모델링에 참여해 2017년 문을 열었다. 한해 평균 4천여명의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이용하는 꿀잠은 수많은 이들의 마음과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문정현 신부와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후원 전시를 열어 건립비를 보탰다. 지하 1층, 지상 4층에 옥탑으로 이뤄진 꿀잠은 비정규직·해고노동자들을 위한 숙식공간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여행업계 청소노동자, 대리운전기사,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 등이 꿀잠을 이용했다.

꿀잠 상근활동가와 노동단체 활동가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종식 기자
꿀잠 상근활동가와 노동단체 활동가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종식 기자

꿀잠 창문 너머로 여의도 고층빌딩이 보인다. 박종식 기자
꿀잠 창문 너머로 여의도 고층빌딩이 보인다. 박종식 기자
아들이 사고를 당한 뒤 꿀잠에 머물렀던 김미숙(53)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국가가 버린 이들을 보듬던 곳이 꿀잠이었다”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투쟁하는 이들이 꿀잠을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속을 털어놓았다. ‘투기와 욕망의 폭주 기관차’가 돼버린 부동산 재개발이 비정규 노동자의 ‘꿀잠’을 앗아가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21년 11월 19일자<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2021년 11월 19일자<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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