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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디지털성범죄 피해 반복 호소해도…센터 대응 더딘 까닭

등록 2021-10-20 04:59수정 2021-10-20 10:39

피해지원 요청건 급증하는데 인력·예산 줄어
피해자지원센터, n번방 사건 후 고정업무도 늘어
1명당 피해자 146명씩 대응…다음달 기간제 만료도
“특정 피해자 위주 지원 밖에” 피해자도 직원도 성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대, ××녀’ 같은 제목이 붙어서 불법촬영물이 유독 빨리 유포되는 피해자들이 있어요. 인력이 부족하니까 더 긴급한 피해자부터 지원할 수밖에 없죠. 피해자들을 공평하게 지원하지 못하니까 늘 죄책감에 시달려요. 제가 맡은 피해자는 저 아니면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으니까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하 센터) 삭제지원팀에서 일하는 ㄱ씨의 말이다. 전 직원 39명이 각기 대응한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평균 건수는 3363건(9월 기준)에 달한다. ‘SOS’를 친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는 늘어나는데 정작 센터 인력은 올해 들어 40% 넘게 줄어들었다. 이마저도 절반 이상(39명 가운데 22명)이 기간제라 계약이 끝나는 11월 업무 마비가 예상된다. 피해자가 범죄에 노출되는 정도도 커질 수밖에 없다.

19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센터의 지원 건수(피해자 1명이 지원을 복수로 요청하기도 함)는 급격히 늘고 있다. 설립 첫해인 2018년 3만3921건에서 2019년 10만1378건, 지난해 17만697건으로 늘어 2년 만에 5배 이상 늘었다. 올해 9월 기준으로도 13만1172건에 달한다. 가령 불법 유포물을 한 사이트에서 지웠을 경우 1건으로, 피해사례나 범위가 급격히 증대된다는 얘기다. 센터 지원을 받은 피해자수도 2018년 1315명, 2019년 2087명, 2020년 4973명, 올해(9월 기준) 5695명으로 크게 늘고 있다.

반면 센터 인력은 대폭 줄었다. 2018년 16명, 2019년 26명이었다가 지난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공론화 영향으로 67명까지 늘었던 인력이 올해 39명으로 줄어들었다. 올 9월 기준으로, 1인당 피해자 146명씩 대응하는 셈이다.

2018년 연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상담지원, 삭제지원, 수사·법률·의료지원연계·유포현황 모니터링 등에서, 올해부터 24시간 피해접수·상담, 선제적 삭제지원 등의 역할까지 추가해 하고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등을 계기로 양성평등기본법·성폭력방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다. 하지만 인력과 예산은 비례하지 못하고 있다. 내년 센터 예산은 21억4200만원으로 올해치(21억4500만원)에서도 오히려 삭감됐다.

노동강도가 커졌음은 물론이다. 삭제지원팀에서 지난해 일했다 올해 4월 다시 입사한 기간제 직원 ㄱ씨는 “지난해엔 21명이 삭제지원을 맡았는데 올해에는 14명이 맡고 있다”며 “인력이 없으니 유포가 빨리, 많이 되는 특정 피해자 위주로 삭제지원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8개월짜리 기간제 인력의 계약이 끝나는 11월말부터는 업무마비 현상까지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다음 기간제 채용 때까지, 39명이 하던 일을 17명(정규직 11명, 무기계약직 6명)이 도맡아야 한다. 박성혜 센터팀장은 “디지털성범죄는 특성상 피해 종결이 없다. 계속 피해자는 누적되는데, 인력은 기간제 계약이 끝날 때마다 대폭 줄어든다. 시급한 삭제 외 선제적 삭제 업무나 24시간 상담지원, 재유포 현황 모니터링 등은 후순위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니 도와달라, 도와달라 반복 요청하는 피해자들도 이어지는 형국이다. ㄱ씨는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촬영물을 누구도 보지 않길 바란다”면서 “기간제로 인원을 뽑다 보면 삭제 지원하는 담당자가 계속 바뀌게 된다. 피해자 입장에선 자신의 영상물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장 원치 않는 일이 또다시 발생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기간제 상담직원 ㄴ씨는 “갑자기 계약만료로 상담원이 변경되면 신뢰관계는 무너지고 피해자의 불안감은 높아진다. 정규직 직원들에게 상담 내역을 넘긴다 해도 여러 피해자 상황을 처음부터 (다시) 파악해야 해 업무 효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획재정부에 정규직 증원 요구를 했던 여성가족부의 권익침해방지과 김지연 사무관은 “지난해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등으로 시급성을 인정받아 하반기에 기간제 인력을 더 증원할 수 있었다. 올해는 아무래도 큰 이슈가 없다 보니 우선순위에 밀리는 것 같다. 국회 심의 때라도 예산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강선우 의원은 “지난해 정부의 디지털성범죄 근절대책 발표 이후,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업무 범위와 역할은 크게 확대됐지만 충분한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탓에 인력 부족, 업무 부담 가중, 인력 이탈, 전문성 약화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범죄예방 및 대응, 사후관리 등 피해자를 위한 전방위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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