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 웅천동 요트 선착장에 홍정운(18)군을 추모하기 위해 놓인 국화. 여수/장예지 기자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아들은 어려운 가정 형편을 생각해 대학에 들어가는 대신 바다에서 꿈을 키워보기로 했다. ‘바다로 둘러싸인 도시니까 레저 쪽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해양레저 전문 특성화고등학교를 나와 일자리를 얻고 요트 사업을 하겠다는 꿈도 꿨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등굣길을 꼬박 데려다줬던 아버지는 선박 관련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아들과 조만간 목포에 갈 참이었다. 하지만 사흘 남은 시험을 앞두고 미리 찍어둔 시험용 증명사진은 아들의 영정사진이 됐다.
지난 6일 전남 여수의 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홍정운(18)군이 웅천동 요트 선착장에서 바다에 들어가 요트 바닥의 조개·따개비를 긁어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가 물에 빠져 숨졌다. 8일 선원동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발인식 뒤 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혔다. “힘들어도 힘들다는 소리를 안 하는 아이였는데…”
이날 빈소와 선착장에서 만난 유족들은 잠수자격증도 없는 홍군이 혼자서 수심7m의 깊은 바다에 들어가 작업한 것에 분통을 터트렸다. 해경이 사고 경위를 조사중인데, 홍군을 구조한 관계자 설명을 종합하면 홍군은 공기통과 오리발, 12㎏ 납 벨트를 착용하고 잠수했는데 착용한 장비가 요트 선체 줄에 걸려 장비를 벗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홍군을 구조했던 유아무개씨는 “원래 장비를 벗을 때는 제일 무거운 납 벨트부터 풀어야 하고, 장비를 받아주는 사람도 이걸 알고 있어야 하는데 결국 장비를 거꾸로 벗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진행된 사고 현장검증에 참여한 홍군의 한 친척은 “전문 잠수사가 시연을 해봤는데 12kg짜리 납 벨트를 차니까 바로 몸이 쑥 내려가 버린다. 학생이 이걸 찼다고 하니 다들 놀랐다. 올라오려고 발버둥을 쳤을 거 아니냐”고 울먹였다.
즉각적인 구조도 이뤄지지 않았다. 사고 발생 뒤 즉각 신고를 한 뒤 구조를 해야 하는 구조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채 홍군이 수면 아래로 사라지자 사장은 주변에 소리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가까운 업체 직원들 두 명이 입수를 시도했지만 구조에 실패했고, 사건 발생 뒤 10여분이 지나 해경에 사건이 접수됐다. 해경으로부터 구조 요청을 받은 해양구조협회 소속 인근 레저클럽 운영진들이 출동해 홍군을 끌어올렸다. 구조 경위를 들은 유족들은 “사고가 아닌 인재”라고 울먹였다.
지난 6일 오전 여수시 웅천동 요트 선착장에서 현장실습을 나가 물속에서 요트 바닥에 붙은 조개, 따개비 등을 긁어 제거하는 작업하다가 익사한 여수의 한 특성화고 3학년 홍정운(18)군의 빈소가 8일 오전 여수시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다. 여수/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홍군은 여름방학에 해당 요트업체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지난달 27일부터 현장실습생으로 일했다. 약 3개월간 주35시간, 최저임금 지급을 조건으로 계약했다. 그러나 법과 안전수칙 등이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현장실습계획서에 적시된 홍군의 업무는 ‘요트 정비 및 수리, (요트 탑승객)서비스’로 잠수작업은 해당하지 않는다. 18살 미만(홍군은 만17살11개월)이 잠수작업에 고용되는 것은 근로기준법·청소년보호법 위반이다. 수중작업은 2인1조로 해야 하고 안전관리관이 배치돼 있어야 하지만, 홍군은 혼자 작업했고 요트업체 사장만 뭍에 있었을 뿐이다. 해당 요트업체 사장은 해경 조사에서 사고는 ‘홍군의 과실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잠수사들은 따개비 등을 제거하기 위해선 통상적으로 크레인으로 배를 뭍으로 끌어올려 작업 하는데, 장비를 쓸 수 없는 경우 잠수자격증이 있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물속으로 들어가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여수 요트업체 관계자들은 최근 환경오염과 민원(분진 발생) 등으로 선착장 크레인 작업이 금지된 상태라고 전했다.
이에 유족들과 전문가들은 해당 업체에서 시간과 비용을 아끼려고 홍군에게 해당 작업을 시킨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제주도에서 22년째 마리나를 운영하는 문아무개(40)씨는 “스킨스쿠버나 잠수기능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일이고, 경험이 부족한 고등학생에게 시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반드시 2인 1조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 혼자 작업을 하게 한 것도 비상식적”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20년째 산업잠수사로 일하고 있는 김아무개씨(49)도 “따개비 제거는 산업 잠수나 레저 다이빙을 최소 2~3년 이상 하고 100회 이상 다이빙 경험이 있는 이들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작업을 위해 전문가를 부를 경우 자격증에 따라 50~200만원 사이의 돈이 든다고 설명했다.
유족과 친구들은 거절을 잘 못 하고 책임감 강한 홍군의 성격상 자신을 실습생으로 뽑아 준 사장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했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홍군의 어머니는 “아르바이트하는 동안 말도 없이 시키는 일을 잘하니까 실습생으로 쓰고 싶다고 먼저 연락이 와서 계약까지 하게 됐다. 우리는 (사장을) 믿고 애를 보낸 건데 이렇게 됐다”고 가슴을 쳤다. 친구 김준혁군도 “(홍군도) 자격증도 따고 취업과 연결되는 일이기도 해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빈소에는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 이상영씨도 발걸음을 했다. 현장실습생이던 이군은 2017년 11월 제주도 생수 공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빈소를 지키던 홍군의 같은 학교 친구는 “이번 일로 현장실습으로 바다 쪽은 못 갈 거 같다”고 고개를 떨궜다.
‘여수 고 홍정운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진상규명 대책위’와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와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은 이날 여수와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전국 모든 현장실습생에 대한 안전점검 실시 등을 촉구했다.
홍정운(18)군이 착용했던 12kg 납 벨트(잠수장비) 유족 제공
홍정운(18)군이 요트 바닥의 조개류를 제거 할때 썼던 스크래퍼. 유족제공
여수/장예지 기자,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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