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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반-메디치 지식인 ‘세계시민’을 꿈꾸다.

등록 2021-09-11 14:43수정 2021-09-27 17:00

[한겨레S] 임병철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 ⑨ 프란체스코 필렐포
이탈리아 피렌체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이탈리아 피렌체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현자라면 또 누구보다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그저 단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전 세계를 자신의 조국이라고 부릅니다.”

1450년대 중반 프란체스코 필렐포는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팔라 스트로치를 위해 한 편의 시를 썼다. 팔라는 15세기 초반 피렌체에서 가장 부유했던 지도층 인사이자 존중받던 정치가였으며, 당대의 어느 지식인 못지않게 고전에 대한 조예 역시 풍부했던 뛰어난 휴머니스트였다. 하지만 그는 1434년 메디치 가문이 집권하면서 피렌체에서 추방되었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파도바에서 30년 남짓의 남은 생을 망명객으로 마감했다. 필렐포의 시는 이 불운한 명망가 팔라를 위로하기 위해 그리스어로 쓴 속 깊은 우정의 헌사였다.

가변적인 외부 세계의 변덕에 초연한 현자의 삶을 노래

출신 성분과 무관한 사회적 유동성의 증가를 15세기 이탈리아 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때, 필렐포는 누구보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마르케의 작은 도시 톨렌티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학문적 재기를 뽐냈고 그 결과 십대 후반부터 이미 북이탈리아 지식인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이내 베네치아의 시민으로 받아들여졌다. 더욱이 20대 초반 베네치아 정부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파견되어 그곳에서 보낸 6년 남짓의 시간을 발판 삼아, 그는 당대 최고 그리스 문학의 대가로 성장했다. 이후 하나의 도시에 정착하기보다 마치 모든 것에 초연한 ‘방랑자’처럼 이탈리아 곳곳을 전전했던 그의 인생 이력은 이와 같은 초년 시절의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필렐포와 팔라의 만남은 1420년대 말 시작되었다. 여러 곡절 끝에 필렐포가 새롭게 문을 연 피렌체 대학교에서 그리스 문학 강좌를 맡게 된 것이 계기였다. 하지만 그가 경험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본향이라는 명성이 무색하리만치 볼썽사나운 정치적 파벌싸움으로 뒤덮인 혼란의 도가니였다. 특히 팔라가 대표하는 전통적인 지배 가문과 새롭게 피렌체 정치계에 두각을 나타내던 메디치 가문 사이의 대립은 물리적·정신적 차원 모두에서 도시 곳곳을 암투의 그림자로 물들였다. 필렐포가 발을 들여놓은 곳이 바로 이곳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그 역시 그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한마디로 그는 반메디치 지식인이 되었고, 그 결과 팔라처럼 피렌체에서 추방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르네상스기의 인본주의자였던 필렐포. 위키피디아
르네상스기의 인본주의자였던 필렐포. 위키피디아

이를 고려하면 앞서 언급한 그의 시는 오랜 기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팔라에 대한 위로이자, 정치적 격랑에 휘말린 지식인으로서의 자기 스스로에 대한 변론처럼 보인다. 특히 여기에서 그는 팔라에게 “외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만이” 자신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바다에 접해 있는 모든 나라”, “태양 아래의 모든 곳”이 변화무쌍한 외부 세계의 변덕에 초연한 “현자”들을 위한 진정한 “고향”이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 점에서 피렌체에서의 경험이 그에게는 이른바 ‘세계시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벼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필렐포는 소크라테스조차 스스로를 “아테네인도 아니요 스파르타인도 아닌, 세계시민”으로 인식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고대의 철학자를 꼭 빼닮은 덕성 있는 현자의 모습으로 팔라와 자신을 포장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와 같은 세계시민주의는 코시모 데 메디치라는 최대의 정적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피렌체의 정치 경험이 농축된 한 저작에서 그는 코시모를 “교활한 늙은 구렁이”로 비난하면서 그의 집권과 함께 피렌체가 자랑하던 황금시대가 종말을 맞게 되었다고 한탄했다. 그에게 코시모는 부를 이용해 우매한 군중들을 포섭하고 권력을 장악한 부덕한 인물이었다. 더욱이 그렇게 손에 넣은 권력을 이용해 더욱더 부만을 탐함으로써 코시모가 공화국의 모든 질서와 조화를 깨뜨렸다는 것이 그의 힐난이다. 이와 비교할 때 팔라야말로 공익을 위해 헌신한 모범적 시민의 전형이었다. 물론 훗날 팔라의 죽음을 애도하며, 필렐포가 팔라를 ‘국부’(pater patriae)로 호명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일 테다.

피렌체 대학교 사회과학도서관. 피렌체 대학교 페이스북 갈무리
피렌체 대학교 사회과학도서관. 피렌체 대학교 페이스북 갈무리

메디치 가문과 대립하며 모범적 시민의 덕의 정치 주장

그런데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예기치 않게 부에 대한 당대인들의 시각 또한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친구 알베르티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쓴 한 시에서 그는 인간이 부의 추구를 멈출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삶에 많은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노래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알베르티에게 자신은 덕과 부가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회의하며 그저 “소유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에 만족”할 것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그에 따르면 부는 인간의 육신을 약하게 만들고 고귀한 지성을 병들게 할 뿐이다. 물론 필렐포의 실제 삶의 궤적이 그가 소리 높여 노래한 현자의 삶을 그대로 뒤밟아 갔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의 이야기 속에 부의 세속적 가치에 대한 르네상스인들의 생각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가 한편으로는 유용하지만, 코시모가 예증하듯이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다.

아마도 이 모든 성찰은 메디치라는 거대한 가문과 충돌했던 젊은 시절의 남다른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일까? 대표 시집 <풍자>의 한 편으로 1440년대 중반에 쓴 한 시에서 그는 코시모를 향해 뜻 모를 조언을 던지기도 했다. 지금 코시모는 혼탁한 이탈리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을 마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상황에 합당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필렐포에 따르면, 코시모 앞에는 ‘모범적인 시민의 길’과 ‘독재자의 길’이라는 상반된 선택지가 놓여 있으며 이제 그는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 수수께끼 같은 시를 지으며 그가 기대했던 것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갈음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거대한 정치권력과 충돌했던 뼈아픈 경험 이후 스스로 세계시민이 되고자 했던 필렐포에게 찾아온 성찰, 즉 다른 무엇보다 공익이 우선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그 아래 흐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르네상스인들은 그렇게 ‘덕의 정치’를 꿈꾸고 있었다. 


임병철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_ 르네상스는 말과 글을 통해 고대 세계를 부활시키려던 지적 운동이었다. 14세기 이후 백가쟁명의 지성사를 검토하는 ‘르네상스와의 대화’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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