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압 송전선로가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 삼은마을을 지나고 있다. 홍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초고압 송전탑이 설치돼 20년 동안 고통을 받아 왔는데, 새 송전선로가 마을을 가로지른다고 하니 막막하기만 해.”
원종두 (66) 씨가 사는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는 요즘 초고압 송전탑 건설 계획으로 뒤숭숭하다. 2000 년 765㎸ 신태백 송전선로 건설로 피해를 봤던 홍천군에 또다시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은 경북 울진에서 시작해 태백산맥을 가로질러 경기도 가평에 이르는 송전탑 440 개, 선로 길이 230㎞ 의 동해안(울진) ~ 신가평 500㎸ 초고압 직류송전 방식 송전선로 건설을 추진 중이다. 한전은 강릉 안인화력발전소 와 삼척화력발전소 건설로 추가 송전선로 설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지방자치단체와 지역민의 반발은 거세다.
신대리 주민이 송전탑 옆 자신의 집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홍천/박종식 기자
신태백 송전선로로 피해를 입었던 홍천 - 횡성 구간 지역 주민들은 강원도 송전탑반대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입지 선정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55㎞ 에 이르는 홍천 - 횡성 구간에는 110 개의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으로 , 이미 송전탑 21 개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홍천군 신대리 주민들은 걱정이 크다.
가을장마가 지나고 화창하게 갠 8 일 오후 홍천군 남면 신대리 삼은마을을 둘러싼 송전탑에서는 ‘윙윙윙’ 전기 흐르는 소리가 거세게 들려왔다. 송전탑 옆 주택 거실에서도 송전선로의 굉음이 전해져 왔다. 정부는 송전탑의 안전성을 주장하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삼은마을 한 주민의 거실에서 100m 높이의 송전탑이 보인다. 홍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송전탑이 들어서고 암소의 유산이 이어지자 삼은마을 주민들은 축산업을 접어야 했다. “ 송전탑이 설치되고 마을 사람 여럿이 암으로 죽었지.” 원씨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20 년 전 신대리 주민들 사이에 송전탑 건설 찬반이 갈리며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주민들은 동해안 - 신가평 송전선로 건설로 갈등이 재현될까 두렵기만 하다.
전국 1040 개 중 334 개가 강원도에 있는 초고압 송전탑은 수도권 전기 공급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송전탑이 지역 공동체를 가르고, 주민들의 건강권과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지만 정부는 석탄발전을 기반으로 한 송전선로 건설을 멈추지 않고 있다.
삼은마을 주민들이 송전탑 앞을 지나고 있다. 홍천/박종식 기자
20 년째 송전탑을 마주하며 살아온 원종두씨는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되물었다. “ 서울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마냥 희생해야 해?”
홍천/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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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0일자<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