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폐회로텔레비전(CCTV·시시티브이) 설치법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23일 오후 서울 도봉구 강북힘찬병원에서 직원들이 수술실 시시티브이를 점검하고 있다. 힘찬병원은 올해 6월 부평점과 목동점에 수술실 시시티브이를 설치했고, 지난달에는 강북점과 창원점에도 확대해 4개 지점의 모든 수술실 25실에 시시티브이를 설치했다. 연합뉴스
7년에 걸쳐 부침을 거듭했던 ‘수술실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법’이 23일 여야 합의로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며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행법상 의료사고 소송에서 환자 자신 혹은 보호자가 병원의 책임 소재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을 비춰볼 때, 환자 안전과 인권을 진전시키는 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예외나 모호한 조항이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한편, 개인정보 유출이나 의료진과 환자의 신뢰 관계 훼손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날 오후 수술실 시시티브이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개정안은 수술실 안에 외부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은 시시티브이를 설치·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시행까지는 법안 공포 뒤 2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개정안은 환자 또는 보호자의 요청이 있을 때 녹음 없이 수술실을 촬영할 수 있도록 했고, 환자와 의료인 등 정보 주체 모두의 동의를 받은 경우엔 녹음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시시티브이 설치 비용을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시시티브이 열람 비용은 열람 요구자가 부담하도록 했다.
의료계 반발 등을 고려해 예외조항을 둬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의료진이 촬영을 거부할 수도 있도록 했다. △수술이 지체되면 환자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응급수술을 하는 경우 △환자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위험도가 높은 수술을 하는 경우 △전공의 수련 목적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이다.
아울러 개정안은 △범죄 수사, 재판 수행을 위해 관계 기관이 요청한 경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의료 분쟁의 조정 또는 중재 절차 개시에 따라 요청하는 경우 △환자와 해당 의료행위에 참여한 의료인 등 정보 주체의 동의를 모두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료기관장이 촬영 자료를 열람하게 하거나 제공해선 안 되도록 했다. 의료기관장 자신이 열람하는 것과 사본을 발급하는 것도 금지된다. 촬영한 영상은 30일 이상 보관해야 한다. 시시티브이 설치 의무 또는 촬영 의무를 위반할 경우엔 500만원 이하 벌금, 촬영된 영상 및 정보를 누출하거나 법이 허용하는 목적 외 사용한 경우엔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법안이 법사위를 거쳐 25일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시행일은 2023년 7월25일이 된다.
수술실 시시티브이 설치는 무자격자의 대리 수술이나 의료실 내 성범죄 등 사건이 여론화되면서 이를 막을 예방적 대안으로 환자 단체를 중심으로 필요성이 제기됐다. 2016년 당시 대리 수술로 사망한 20대 청년 사건이 대표적이다. 실제 대부분 환자 입장인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수술실 시시티브이 설치 의무화법에 찬성하는 쪽이 대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6월 진행한 온라인 의견조사에선 98%, 같은 달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 조사에선 79%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시시티브이 의무화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의 인권보호에 부합한다는 의견을 냈고, 최근엔 자발적으로 시시티브이를 설치하는 병원들도 나타났다.
최근 의료사고 입증책임을 의료기관에 부과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에선 환자의 주장만으로 의료인이 무과실을 입증해야 한다면 안정적인 진료 환경이 훼손된다는 이유로 여전히 반대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법안은 환자 쪽이 입증 근거 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했다는 의미가 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장은 “수년 동안 이어온 논쟁 끝에 이뤄진 법안 통과를 환영한다. 특히 의료 분쟁에 중요 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시시티브이 내부 설치·촬영을 원칙으로 했다는 점과 촬영보다 부담이 적은 열람 비용을 요구자가 부담하도록 한 점이 의미가 있다”며 “다만 위험도 큰 수술과 전공의 참여 수술을 이유로 촬영을 거부할 수 있게 해 자의적 해석으로 적용 대상이 너무 넓어질 우려가 있다는 점은 아쉽다. 이후 법안 논의 과정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견문을 내어 “의사들을 모두 감시하에 놓아두고 행위 하나하나를 판단 대상으로 삼겠다는 이 제도는, 환자의 생사를 다투는 위태로운 상황을 가급적 기피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다 확산시킬 것이 자명하다”며 “정보 유출을 통한 개인권 침해, 감시 환경 아래에서 의료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환자와 의사 사이 불신 조장 등 민주 사회의 중요 가치에 대한 훼손”이라고 밝혔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유령 수술, 대리 수술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력 부족 문제와 함께 폐쇄적·수직적으로 운영되는 병원 구조인데, 시시티브이는 이런 본질을 모두 가려버리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시행령 마련 과정에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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