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찰 때는 급여 들어올 때? 아하하하하! 나도 돈을 벌고 고객도 도움을 받을 때, 궁금한 거 시원하게 해결하고 반품이나 교환 원할 때 깔끔하게 처리해 고객이 만족할 때, 그럴 때는 되게 뿌듯하죠. 회사와 고객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거죠. 그런데 회사는 우리를 소모품 취급하고, 어떤 고객들은 불편한 말과 상처 주고 싶은 말, 해서는 안 될 말을 해요.”
시원하게 잘 웃는 주애(가명)씨는 콜센터 아웃소싱 서비스 회사 재택 상담사다. 이 회사는 전국 5개 지역에서 재택 상담사를 모집해 365일 24시간 고객사 콜센터(고객센터) 업무를 대행한다. 주애씨에게는 요즘 두 군데 티브이 홈쇼핑이 뜨는데 그 이상일 때도 있다. 그러니까 고객이 어떤 전화번호로 들어오냐에 따라 ‘가’ 홈쇼핑 상담사가 되었다가 ‘나’ 홈쇼핑 상담사가 된다. 현재 250여 상담사가 각자 집에서 상품 주문·배송·교환·반품 문의와 접수를 처리한다.
주애씨는 집 작은방에 일터를 꾸렸다. 책상 위 데스크톱 컴퓨터 한 대와 노트북 한 대, 숫자키패드, 헤드셋 모두 개인 비용으로 마련했다. 식구가 학교와 직장으로 가면 주애씨도 여기로 출근한다. 프로그램을 열어 로그인하면 근무 시작. 로그아웃 전까지는 통화 종료 2초 만에 연결되는 전화에 바로 응답해야 한다.
“한 달에 150시간 이상 일했어요.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 점심 먹고 집 치우고 애들 오면 간식 챙겨주고 3시부터 5시까지 2시간, 애들 학원 보내고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이런 식으로요. 그래야 시간당 만원 나올까, 100시간 정도로는 그 돈이 안 나와요. 우리는 (사업소득세) 3.3 떼는 사람들이라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해요. 회사는 교육할 때 여러분은 작은 사업자입니다, 그래요. 프리랜서래요. 말이 좋아 프리랜서죠. 요즘 엄마들 많이 배우잖아요, 야간·연장·휴일·주휴수당 이런 거 왜 모르겠어요. 상황이 안 돼 이 일을 하는 건데, 내가 원하는 때 일한다는 거, 집에서 애들 보면서 일하겠다는 거 그 하나가 득이면서 독인 거죠.”
회사는 서류 심사와 면접으로 상담사를 뽑아 40일 남짓 이론과 실무를 교육한다. 중간에 시험으로 일정 인원을 탈락시킨다. 전화 한 콜에 150원 준다는 말에 교육 도중에 그만두는 이들도 있다. 주애씨네 기수는 절반만 교육을 마치고 근무했는데 얼마 안 가 3분의 1이 그만뒀다. 지금도 월 1회 온라인 시험을 재시험까지 친다는데, 그렇다면 “상황이 안 돼” 이 일을 시작했더라도 이제는 교육받고 훈련받고 실무로 다져진 전문 상담사다. 물론 회사가 그에 맞춰 대우하냐면 그건 아니다.
상담사에게 고유한 사원 번호를 주고 업무를 지시·감독·관리하면서도 회사는 근로계약이 아니라 업무위탁계약을 맺고, 임금이 아니라 위탁수수료를 준다. 그래서 이곳 상담사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법정수당을 받지 못하고, 4대보험 가입도 안 된다. 주애씨는 사업소득세 3.3%를 떼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지만, 산재보험 적용 직종이 아니라 올해 7월1일부터 시행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고용보험도 가입하지 못한다. 왜 어떤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닌가.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근로기준법은 주애씨를 왜 제외할까.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라 정의하면서 재택 상담사를 왜 외면할까.
“우리는 기본급 없이 0원에서 시작해요. 호봉이 없어 경력이 몇 년이든 똑같아요. 한 콜 수수료 150원에 월 80시간은 기본, 100시간 이상 일하면 인센티브로 시간당 700원, 150시간 이상은 900원 줘요. 상담사들이 비는 시간대에는 회사가 프로모션이라고 1천~3천원을 깔아주기도 해요. 주문 건 포함 1시간 수입이 기본수수료에 추가수수료 더해야 8, 9천원대죠.”
어쨌든 돈이 되려면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는 일한 시간을 확인하라며 월 근무 시간 집계표를 공개하는데, 한 상담사가 300시간을 일했다. 하루 평균 10시간, 토요일과 일요일은 12시간씩. 주애씨는 깜짝 놀랐다.
“300시간은 충격인데. 어떻게 일했을까요? 대단하지만 일에 치여 사는 느낌이에요. 힘드셨겠다. 당장 그만큼 벌어야 하면 그럴 수도 있겠는데, 계속 이러면 회의감 들 것 같아요. 회사에서 전체를 올리는 것도 의도가 있겠죠? 돈을 더 주지도 않으면서 승부 근성을 자극하겠죠. 나도 120시간 할 때, 교육 동기 언니가 150, 160시간 하는 걸 보고 어? 나도 해볼까?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150시간을 유지했는데,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감정노동을 100시간 넘기는 것만도 대단한 거거든요. 공감해 주는 동료도 없이, 혼자서요. 병 생겨요.”
주애씨는 모니터 왼쪽 벽에 마치 1연 4행의 정형시처럼 “죄송합니다/ 그러시군요/ 불편드려서/ 죄송합니다”를 써 붙였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송하다는 말이, 처음에는 안 나왔단다. 모니터 아래 테두리에도 “죄송합니다만”으로 시작하는 멘트가 나란히 세 장이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무얼까.
“회사는 사람을 중요하게 안 여겨요. 블랙컨슈머가 많은데 우리는 보호를 못 받아요. 그런 고객의 비위를 건드리면 오히려 본사에 불려 가요. 프로그램을 막아 며칠 일도 못 하게 해요. 수입이 빵원이 돼요. 징벌이죠. 압력, 협박! 진짜 ‘감정노동자’라는 말이 맞는 게, 어떤 상황에도 내 감정을 표출하지 않아야 하고 스스로 다 컨트롤해야 해요. 회사를 대신한 욕받이잖아요. 내 사촌은 한 고객에게 붙들려 45분을 통화했어요. 너무 속상해 울었대요. 우리는 상담사끼리 감정을 공유할 수도 없어요. ‘에이, 어휴’ 하며 서로 위로할 수도 없어요. 모든 감정을 혼자 소화해야죠. 녹이지 않으면 내가, 내 몸이 녹겠죠.”
주애씨는 자신을 보호하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방법으로 수세미를 뜬다는데, 책상 밑 네모난 바구니 두 개에 뜨개실 뭉치가 가득하다. 얼굴 모르는 상담사님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했다. 외롭게 혼자 씩씩하게 일하는, 연결되지 못하는 우리에게.
“상담사님들, 파이팅! 힘내세요!”
박수정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