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에 아동학대 담당자가 있고, 경찰에도 학대예방경찰관(APO)가 있어도 무슨 소용입니까. 왜 아동학대 피해 학부모들이 나서야 겨우 들여다보는 것인지 화가 납니다.”(아동학대 피해 학부모 ㄱ씨)
지난해 초 울산에서는 전체 5개 구·군 6개 어린이집에서 교사의 아동학대 사건이 터져 나왔다. 사건은 공론화됐고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중구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피해를 당한 ㄱ씨 역시 지난해 2월 경찰에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수사를 지켜봤다. 같은해 9월 3명의 아동학대 혐의로 원장과 교사 2명이 기소됐고, 그사이 다른 피해 아동과 가해 교사들이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ㄱ씨와 피해아동 부모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해당 어린이집에서 3명이던 피해 아동은 1년 반이 지난 현재 최소 20여명으로 늘어났으며, 가해 교사도 원장을 포함한 3명에서 9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저도 초기 수사에 피해를 증언한 아동에 한해서만 학대 사실을 수사하던 경찰을 의아하게 여긴 부모들이 수사관 변경과 재수사를 거듭 요청하고 부실 수사에 대한 진정을 넣어 드러난 일이었다. 경찰이 수사를 미룬 사이 일부 피해 아동들은 계속 어린이집을 다니며 적절한 조처를 받지 못했다.
ㄱ씨는 1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아동학대를 살펴볼 의무가 있는 기관들이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피해 아동들이 오랜 시간 드러나지 않은 채 방치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경찰의 수사가 부실했다고 비판했다.
ㄱ씨의 4살 아들은 지난해 1월 “선생님이 무섭다. 장난감을 뺏고 손을 들게 했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등원을 강하게 거부하던 아이라 학대를 의심한 ㄱ씨는 원장의 동의를 얻어 열람한 2개월치 폐회로티브이(CCTV) 영상에서 학대 정황을 발견했다. 원장과 교사들이 끈질기게 회유하며 사건을 덮으려 했으나 ㄱ씨와 피해 아동 부모들은 피해사실을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ㄱ씨 등은 경찰이 여러 경로를 통해 추가 피해 사실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신고된 피해 아동 3명 외에 수사를 확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추가 피해 아동 부모인 ㄴ씨가 참고인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하는 등의 이유로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부모들이 직접 나섰다. 부모들은 중구청에도 해당 어린이집의 7개 반에 대한 아동학대 전수조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이 CCTV 원본을 압수해 확인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은 APO에게 다른 반의 CCTV도 확인한 다음 수사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했지만 APO는 학대 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ㄱ씨는 “3~4살된 아이가 어떻게 정확하게 시기를 밝히겠냐”며 “경찰이 CCTV를 가지고 있으니 확인이라도 해줬으면 좋을 텐데 소극적인 수사가 답답하고 아쉬웠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전문가는 부모가 원하지 않는다고 수사기관이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것은 아동학대 사건과 관련된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곽지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자문변호사는 “피해자는 부모가 아닌 아동이다. 부모가 수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종결하는 것은 부모가 아이의 소유권을 지녔다고 보는 잘못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학대 정황은 있으나 수사가 이뤄지지 않자 부모들의 속은 타들어 갔다. 지난해 11월이 돼서야 압수된 CCTV가 반환돼 중구청과 아보전에서도 전수조사를 진행해 다른 반에서 일어난 추가적인 아동학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시민단체가 나서 검찰 고발장을 접수했다. 현재는 기소된 교사 이외에도 해당 어린이집 교사 여러명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수사가 늦게 이뤄지면서 가해 교사들이 그대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피해 아동이 제때 받아야 하는 치료를 놓치게 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학대가 발생한 것을 알자마자 즉각적인 치료와 상담이 필요하지만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아보전 등이 치료 지원에 제때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아동을 잘 치료하려면 부모들도 단단해야 하지만 사건 처리 과정 중 힘든 일을 겪으면서 피해 아동 부모의 정신건강도 악화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1년 넘게 언론과 시민단체 등을 통해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공론화 하느라 ㄱ씨는 많이 지쳐있었다. ㄱ씨는 “어린이집 근처만 가도 몸서리치며 등원을 거부하던 아들은 다행히 지금은 유치원을 잘 다니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무섭다는 말을 반복하고 선생님의 눈치를 심하게 본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모든 피해가 제대로 밝혀지면 좋겠다는 것이 ㄱ씨의 바람이다.
진행 중인 수사와 관련해 울산 중부경찰서 관계자는 “아직 피의자 조사를 다 마치지 못한 상태”라며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해 이르면 이달 중 수사를 결론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부실수사와 관련한 진정은 울산 중부경찰서 청문감사관실에서 감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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