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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31도일 때, 공사장은 40도…믿을 건 ‘포도당 알약’ 2알뿐

등록 2021-08-02 04:59수정 2021-08-02 15:43

노동의 온도 ③ 건설노동자
방음벽에 바람 안 통하는 ‘한증막’
철근·시멘트 열기에 40도 육박
“달궈진 철골 옮기다 화상 일쑤”
구역마다 탈진 예방용 식염 포도당
7월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아파트 건설현장. 점심을 마친 한 노동자를 식수통을 들고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7월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아파트 건설현장. 점심을 마친 한 노동자를 식수통을 들고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한여름 건설현장에는 바람이 드물다. 사방으로 둘러쳐진 방음벽이 공사장의 먼지와 소음은 물론, 바람길마저 막아버린다. 작업자들은 직사광선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늘도, 바람도 없는 열섬의 꼭대기에서 노동자들은 탈진 방지용 포도당 알약을 삼키며 땀을 쏟는다. 지난달 28일 낮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은 한여름의 열기로 가득했다.

공사장은 이날 오전 11시를 갓 넘긴 시각부터 펄펄 끓고 있었다. 기상청이 발표한 이 시각 동작구의 기온은 31도였지만, 공사장 들머리 안전교육장에서 온도계에 기록된 기온은 이보다 4도 높은 35도였다. 공사장 기온이 바깥 온도를 웃도는 이유를 묻자 현장 노동자들은 “달궈질 만한 것들이 많아서”라고 답했다. 철근과 시멘트가 오전부터 볕을 받아 뜨거워지고, 거기서 뿜어진 열기가 현장 외벽에 갇혀 쌓인다는 것이다. “오늘 같은 날씨면 아침 10시만 돼도 모든 쇠붙이가 맨손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가 돼요. 철근 데크 위에 서면 한증막처럼 열이 올라와서 ‘1~2분이면 계란도 익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죠.” 경력 23년의 철근공인 유정구(52)씨가 말했다.

기온은 현장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치솟았다. 입구에서 35도로 측정된 온도는 공사장 안쪽으로 300여m를 들어가자 37.4도로 오르더니, 철골 기둥을 세우는 작업장 옆에서는 38.5도로 기록됐다. 노동자들이 식사하는 컨테이너 앞에서는 그늘막 등 햇볕 차폐 시설이 없어 금세 40도까지 올라갔다.

현장 작업자 500여 명의 작업은 대부분 철제 데크와 시멘트판 위에서 이뤄진다. 철근 팀이 기둥과 벽체의 철제 골조를 세우면, 형틀팀이 그 주위에 거푸집을 둘러친다. 타설팀이 거기에 콘크리트를 부어 굳히면 한 층을 새로 올리는 주요 공정이 마무리된다. 아파트 층을 올리는 작업 특성상 일하는 공간은 공정이 이뤄지는 구조물의 가장 위층이 될 수밖에 없어, 직사광선이 노동자에게 그대로 쏟아진다. 경력 30년의 철근 팀 명우순(61)씨는 “여름 한낮에 철골을 들쳐멜 때는 현장에서 박스를 구해 등에 대야 화상을 피할 수 있지만, 일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큰 화상을 입고 병원 신세를 지기 일쑤”라고 말했다. 형틀팀 전득진(56)씨도 “한 명이 하루에 무게 18㎏ 거푸집 틀을 80∼90장 붙인다. 15m 정도 거리를 들고 와서 붙여야 하는데, 몇 번만 반복하면 비 오듯 땀을 쏟는다”고 혹서기 작업의 어려움을 전했다.

7월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아파트 건설현장. 오후 1시 24분 온도가 39.3.도를 보이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7월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아파트 건설현장. 오후 1시 24분 온도가 39.3.도를 보이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시공사는 작업자들의 탈진에 대비해 작업구역 어귀마다 얼음통과 식염 포도당 알약을 놓아둔다. 땀으로 염분을 많이 잃어 쓰러지지 않도록 노동자들은 오전·오후 한 알씩 이 알약을 먹는다. 한낮 작업을 줄이기 위해 근무 시간은 새벽 6시∼오후 2시로 당겨졌고, 현장 중심부에는 이동식 에어컨이 설치된 천막 쉼터도 들어섰다. 하지만 50분 작업 뒤에 돌아오는 10분의 휴식시간에 노동자들은 쉼터가 아닌 작업용 임시엘리베이터 뒤쪽에 모여들었다. 쉼터까지 다녀오기엔 시간이 부족한 탓이다. 한 철근공은 “에어컨 바람은 일과 중엔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할 시간에 작업장에서 저리 먼 쉼터까지 가서 쉬고 있으면 원청 시공사 직원들이 좋게 볼 리가 있겠나. 실제로 저기서 쉬는 사람 거의 못 봤다”고 귀띔했다.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대부분 50, 60대의 중노년층이었다. 20년 이상 전국 건설현장을 누빈 베테랑 기술자들이지만, 코로나19와 겹친 올해 더위는 유독 버겁다고 했다. 코와 입을 막은 마스크가 더운 숨조차 몰아쉬기 어렵게 만든다. 잊을 만하면 들리는 다른 사업장 사고 소식도 노동자들의 어깨를 무겁게 누른다. 혹서기 작업에는 어느 때보다도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열대야에 밤잠을 설치다 새벽 4시께 일어난 노동자들의 전날 수면 시간은 대개 4시간을 넘지 않는다. “지난주 수도권 한 현장에서도 철근이 떨어져 아래 지나가던 작업자가 사망했다고 들었어요. 돌아가신 분 안전모도 쓰고 있었다는데….” 한 노동자가 말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전국 산업사고 사망자 882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458명이 건설노동자였다. 이들 중 76%인 349명이 한여름을 낀 3분기(7∼9월)에 사망했다.

폭염 노동을 견디게 하는 건 곧 시작될 ‘여름 휴가’다. 작업자들은 타워크레인 운전자들 휴식 기간에 맞춰, 8월 첫째 주에 휴가를 떠난다. 사실상 연중무휴로 돌아가는 건설현장에서 여름 휴가는 ‘드문 행운’이라고 한다. 기타 연주가 취미인 전득진씨는 휴가 동안 그동안 미뤄둔 취미 생활을 즐길 생각이다. 강원도 여행 계획도 잡아 놨다. “생활패턴이 달라서 평소에는 두 아들 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휴가 땐 가족과 맘 편히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건설노동자들에게도 재충전의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땀으로 얼룩진 그의 얼굴에는 다급한 갈증이 섞여 있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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