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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분류 마치니 한낮…“택배 언제 와요” 독촉에 점심은 사치

등록 2021-07-30 04:59수정 2021-07-30 10:22

노동의 온도 ②택배 노동자
‘폭염엔 휴식’ 권고, 애초 불가능
땡볕에 달궈진 트럭안은 54도…
택배노동자가 2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 인도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배달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택배노동자가 2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 인도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배달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54.1˚C. 28일 오전 11시, 경기도 광주시 외곽에 있는 로젠택배 분당대리점 분류작업장에 짐을 실은 조현일(가명·45)씨는 차 안 온도계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1톤 트럭 운전석이 햇빛을 받아 한껏 달궈져 있었다. 수도권 일대에 연일 폭염 경보가 이어지며 이미 바깥 기온은 35도를 훌쩍 넘었다. 조씨의 옷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돼 있다.

■4시간 자고 출근…폭염 속 분류작업

기자는 이날 새벽부터 조씨의 일과에 동행했다. 새벽 5시 30분 그는 한손엔 1.8ℓ 검은색 보랭병과 다른 한손엔 포도당 알약통을 쥐고 집을 나섰다. “잠을 4시간 정도 잤네요.” 그는 전날 일이 많아서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했다. 최근 코로나19와 폭염으로 물량이 늘어난 뒤로 밤잠을 편히 잔 적이 없다고 한다.

새벽 6시, 이천 물류센터에서 출발한 대형 트럭이 화물을 한가득 싣고 작업장에 들어왔다. 팀장이 “오늘은 차 여섯대 들어온대. 4천개에서 6천개로 늘었네!”라고 외쳤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택배 물량이 늘었다. 하역을 담당하는 노동자는 웃통부터 벗어 던졌다. 택배 노동자들은 한손에 바코드 리더기, 한손엔 검은 매직을 들고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섰다. 자신이 맡은 구역으로 배송할 물건이 오면 바코드를 스캔하고, 주소를 큰 글씨로 다시 썼다. 글씨를 다시 쓰는 건 송장 글씨가 작아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애초에 본사에서 송장 글씨를 크게 하면 될 일 아니야? 본사 직원 여기 와서 한 번만 일해봐라.” 누군가 투덜댔지만 대꾸할 여유는 없다. 글씨를 다시 쓰면서 주소를 잘못 옮겨쓰고, 엉뚱한 곳으로 배송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해가 떠오르자 땅에선 지열이 올라왔다. 슬레이트 지붕으로 엉성하게 지은 분류작업장에 무더운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았다. 금세 마스크가 땀에 젖었다. 마스크를 쓰고 조씨의 일을 돕자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낡은 선풍기 몇 대가 놓여 있었지만 있으나 마나였다.

20여명 남짓한 노동자들이 6천개 남짓한 화물들을 내리고 분류작업을 마치고 나니 이미 해가 중천에 떴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사회적 합의기구)는 지난 1월 말 분류작업(까대기)을 회사가 책임지도록 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로젠택배는 아직 계도기간이라 9월 1일까지는 택배 노동자들이 까대기를 한다. 분류작업을 마친 조씨는 수돗가로 가서 찬물에 머리를 적셨다.

정부는 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한낮에 야외노동자들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권고하지만 택배 노동자들에겐 불가능한 주문이다. 분류작업을 마치고 일을 시작하는 정오가 다가오면서 고객들의 독촉전화와 문자를 알리는 휴대전화 진동이 끊임없이 울렸다. “오늘 물건 시켰는데 언제 오나요?” 점심은 사치다. 그는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택배노동자가 28일 낮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가게에서 얼음물을 새로 채운 물통을 차량에 놓고 있다. 성남/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택배노동자가 28일 낮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가게에서 얼음물을 새로 채운 물통을 차량에 놓고 있다. 성남/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무거운 상자, 무더운 마스크…“그래도 뛰어야”

첫 배송지에 도착하자마자 뛰었다. 담당구역인 성남 분당구 구미동 일대는 엘리베이터 없는 낡은 저층 아파트와 빌라, 상가건물이 많다. 뛰지 않으면 시간 안에 물량을 모두 배달하기 힘들다. 고령 인구가 많아 쌀과 소금, 물 등 무게가 나가는 식료품 배송주문이 많다. 빌라 2층 한 가정집 앞에 소금 포대를 내려놓고 나오는데 백발의 할머니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고맙다”며 얼음물을 건넸다.

복도식 아파트에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후다닥 뛴다. 잘하면 문이 닫히기 전에 엘리베이터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35도가 훌쩍 넘는 뙤약볕에 마스크를 쓰고 같이 뛰니 숨이 컥컥 막히고 머리가 핑 돌았다. 하지만 조씨는 마스크를 내리지 않았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복도마다 카메라가 있어서 혹시 민원이 들어올지 모르거든요.”

탑차 안은 뙤약볕에 달궈져 온도계가 40˚C를 가리킨다. 택배 몇 개만 옮겨도 땀이 줄줄 흐른다. 오후 2시가 되자 1.8ℓ 보랭병에 가득 채운 물이 바닥났다. 택배 노동자들에게 가장 힘든 시간은 한낮보다는 오후 4∼5시다. 시간 안에 일을 마치려고 점심을 거르고 일하다 보면 허기가 밀려온다. 조씨는 차 아이스박스에 넣어뒀던 에너지바를 꺼냈다. 이걸로 퇴근 뒤까지 버텨야 한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한 아파트 주민이 집 앞에 택배 노동자들을 위한 음료와 먹거리를 놓아 둔 모습. 이재호 기자 ph@hani.co.kr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한 아파트 주민이 집 앞에 택배 노동자들을 위한 음료와 먹거리를 놓아 둔 모습.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이제부턴 배송 물품 집하(수거)를 해야 해요.” 탑차가 비어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분당 구미동 일대에는 소상공인들이 많은데 인터넷으로 고객의 주문 받아 배송하는 물품들이 많다. 저녁 7시30분,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할 무렵 집하가 끝났다. 둘이서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보통은 밤 10시가 훌쩍 넘어야 끝난다.

분류장으로 돌아와 물류창고행 트럭에 집하 물품을 싣고 나니 밤 9시. 조씨와 기자가 이날 배송한 물건은 214개, 집하한 물건은 86개로 300개다. 그가 입은 검은 옷에는 소금꽃이 하얗게 펴 있었다. “색깔 옷은 땀에 젖은 티가 나서 좀 추레해 보여서 검은 옷을 입어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을 꼬박 일하고 연차휴가도 없는 조씨는 8월 14일부터 3일간 이어지는 ‘택배 없는 날’ 연휴만 손꼽아 기다린다. “다른 노동자들처럼 주 5일 근무도 하고 가족들과 저녁도 먹고 싶어요. 본사가 분류작업을 꼭 책임져줘야 가능한 일이에요.”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로젠택배 분류작업장에 세워 놓은 차량의 실내 온도가 54도를 넘어선 모습. 이재호 기자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로젠택배 분류작업장에 세워 놓은 차량의 실내 온도가 54도를 넘어선 모습. 이재호 기자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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