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가입한 손정민씨 사건 관련 두 곳의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발췌해 재구성한 메시지들
제가 가입한 카카오톡 두 곳의 단체채팅방에 지난 한달간 늘 ‘300+’라는 알림 표시가 떠 있었습니다. ‘추모방’과 ‘보호방’이라고 부르는 두 단체채팅방에 일상적으로 300개 이상 새 메시지가 쌓일 만큼 많은 대화가 오갔다는 뜻입니다.
한 곳은 지난 4월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손정민(22)씨를 애도하고, 사망 경위를 둘러싼 진실을 묻는 ‘정의로운 나라 손정민 추모방’(이하 추모방·9일 기준 가입자수 453명)입니다. 다른 한 곳은 손씨 실종 직전, 그와 함께 있었던 친구를 보호하기 위한 ‘친구 A 보호 모임’(이하 보호방·가입자 287명)입니다. 몇시간만 안 봐도 흐름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실시간 대화가 이뤄졌던 곳들입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경찰 변사사건심의위원회에서 손씨 사건을 종결하기로 결정하면서 방을 나가는 사람은 늘어나고, 대화량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두달 넘게 사회적 관심을 모았지만 변사로 일단락된 한강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요?
안녕하세요. 사회부 사건팀에서 각종 사건·사고를 가리지 않고 다루는 장예지입니다. 한 개인의 죽음에서 진실을 확인한 뒤 그를 추모하며 온전히 떠나보내는 과정을 하나의 의례라고 한다면, 안타깝게도 손씨의 죽음에선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손씨의 사망 경위를 둘러싼 근거 없는 의혹들이 여러 음모론으로 번지는 일이 거듭됐습니다. 친구 A씨를 향한 일부 누리꾼의 도를 넘는 공격, 진실을 밝히려는 수사기관을 향한 거의 무조건적 비난이 난무했던 상황에서 손씨의 죽음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 요원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사회학자와 미디어 전문가, 법조인들에게 손씨 죽음에 음모론과 갈등이 반복되는 근본 원인을 물었지만 쉽사리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몰두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수사기관에 대한 해묵은 불신과 잘못된 언론 보도, 일부 유튜버의 일탈 등 영향이 크겠지만 그것만으로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고 말한 전문가도 있었습니다.
9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 마련된 고 손정민씨 추모공간.
취재 과정에서 기자의 눈에 띈 건 ‘정의’라는 단어였습니다. 지난달 28일 추모방에서 한 참여자는 “경찰이나 언론 수작에 학을 뗐다. 정의를 추구하는 국민의 힘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 사건에 관심이 큰 것은 ‘정의 실현 추구’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보호방 쪽에서도 ‘A씨 보호가 필요하다’는 이유만 달랐을 뿐, 또 다른 방향에서 ‘정의 실현’을 말했습니다. 두 단체채팅방에서뿐 아니라 손씨 사건의 진실규명에 나서겠다며 개설됐던 온라인 커뮤니티들도 ‘정의를 바로 세우는 문제’라는 식의 주장을 했습니다.
일부 유튜버들은 반포한강공원을 비추는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수차례 재생하며 ‘손씨 폭행 사망설’, ‘마약설’, ‘중국 개입설’ 등 허무맹랑한 주장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인의 성격과 친구관계에 대한 무분별한 추측은 물론 함께 있던 친구 A씨를 둘러싼 악의적 루머가 양산됐습니다. 공원에 들른 시민들은 이들과 시시티브이에 함께 찍혔다는 이유로 신상 유포의 대상이 됐습니다. 손씨를 둘러싼 ‘타살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매수된 조선족’이라는 혐오성 조롱을 받았고, 손씨의 죽음에 동요한 중년 여성들은 ‘맘충’ 또는 ‘아줌마’로 비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모두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취재하며 마음이 더욱 편치 않았던 건 손씨 사건과 함께 언급된 다른 죽음들 때문이었습니다. 추모방 사람들은 때때로 세월호 사건 당시의 정부와 수사기관의 은폐·조작 의혹을 거론하며 한강 사건이 이와 닮은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최근 경기도 분당에서 실종됐다 주검으로 발견된 고등학생에 대해서도 “타살 혐의점이 없다”는 경찰 발표도 믿지 못하겠다는 주장까지 나왔지요. 반면 평택항 부두에서 일하다가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대학생 이선호(23)씨 사건처럼 진짜 관심이 필요했던 사안에는 사회적 눈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했습니다.
9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 마련된 고 손정민씨 추모공간 앞. 몇몇 유튜버는 이곳을 비추며 발언을 이어갔고, 손씨의 사진과 메시지를 지켜보는 시민들도 있다.
한강 사건 이후 두달간 소환된 여러 죽음을 보며, 우리 사회에 축적되어온 ‘부정의’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정부나 수사기관, 언론을 의심하지 않고서도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애도할 추모의 경험이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 속에선 비뚤어진 정의감을 내보이며 무책임하게 의혹을 쏟아낸 ‘사이버 레커’(이슈가 터졌을 때 실시간으로 영상을 만들어 조회수를 올리는 유튜버)가 사람들의 분노를 부채질해 관심을 끌고, 경제적 이익을 거뒀습니다.
시간이 더 흐르면 한 청년의 죽음에 관한 기억은 무뎌질 것입니다. 손씨의 죽음 이후 벌어진 현상들이 우리 사회에 또 다른 불신의 씨앗을 남기는 건 아닐까 씁쓸한 뒷맛이 남습니다.
글·사진 장예지 사건팀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