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강원국의 ‘공부하면 뭐 하니’
쉰 살 넘어 알았습니다. 내가 말을 잘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전까지 나는 실어증에 가까웠습니다. 남 앞에서 말하는 게 가장 두려웠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적까지는 말할 일이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발표, 토론 같은 걸 하지 않았으니까요. 초등학생 시절 웅변이란 걸 해본 적은 있었네요. 6·25를 맞아 ‘반공 웅변대회’에 나갔다가 ‘개망신’을 당한 적이 있지요. 반 대표로 나가 입상은커녕 예선 탈락했습니다. 친구들은 내가 웅변하면서 보인 특유의 억양, ‘이 어린 연사’를 흉내내며 놀렸습니다. 다시는 말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말을 잘하기까지는 세 번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대학교 4학년 졸업논문 발표였습니다. 형식적인 과정이었지만 발표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었습니다. 지도교수와 친구들 앞에서 5분 정도 말하면 됐지요. 하지만 제게는 천 길 낭떠러지로 뛰어내리는 일이었습니다. 졸업은 해야겠기에 결국 술을 물병에 담아 와서 발표 직전 화장실에 가서 마셨습니다. 소주 한 병 분량의 외삼촌 양주를 들이켠 탓에 혀는 꼬였지만 말하는 게 두렵진 않았습니다. 교수님께서 “너는 어제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냐?”고 했지요.
대학 시절 내내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1980년대 초중반인 당시만 해도 친구들끼리 모이면 논쟁이 잦았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제 등 시국에 관해 격렬하게 토론했습니다. 나는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할 말도 없었고, 설사 있어도 말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이제 늦었으니 집에 가자”고 할 때 허탈했습니다. ‘나는 아직 한마디도 못했는데.’ 그러면서 화도 났지요. ‘서울에서 산 너희들은 어릴 적부터 보고 들은 게 많구나. 이거 불공평한 것 아냐?’ 하지만 정작 화를 낸 대상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못난 자신에 대한 화풀이였습니다.
두 번째 계기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입니다. 대통령은 토론을 좋아했습니다. 광복절을 앞둔 어느 날, 여의도 설렁탕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부속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어떤 내용으로 할지 토론하자고 하십니다. 연설비서관이 발제를 하라고 하십니다.” 나는 숟가락을 놓았습니다. ‘이제 떠날 때가 됐구나.’
떠날 생각을 실제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기 나가면 다신 볼 일 없는 사람들인데, 마지막으로 망신 한번 당하고 나가? 대통령이나 수석들을 길거리에서 만날 일도 없잖아.’ 우여곡절을 거쳐 발표하게 됐습니다. 발표 내용을 글로 작성해 외웠습니다. 쓰기와 외우기는 시간만 들이면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발표 시간, 천장을 보고 외운 것을 외쳤습니다. 분위기가 싸한 걸 느꼈지만 나는 일사천리로 내질렀습니다. 내 말이 끝났을 때 ‘이게 뭐지?’ 하는 반응이었지요.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일심동체가 된 듯했습니다. ‘저 친구를 구해줘야겠다. 정상이 아니다. 빨리 저기서 내려올 수 있게 도와주자.’ 나는 발표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웠습니다.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화끈거렸지요.
세 번째 계기가 된 그날이 왔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주례를 선 날입니다. 그때 쉰둘이었으니 주례 서긴 이른 나이였지요. 서 있지 못할 정도로 떨었습니다. 결혼식이 오후 3시였는데 오전부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결혼식을 보면서 주례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마쳤습니다.
문제는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벌어졌습니다. 위암 선고를 받은 것이지요. 그런데 위암 선고를 받은 장소와 주례 선 곳이 100m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위암 선고를 받고 나오면서 보인 건물이 일주일 전 주례를 선 곳이었으니까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일주일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러니까 위암 선고 받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는 이렇게 살지 말자. 내 주례사를 누가 듣는다고, 나를 알지도 못하고 내게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 떨었단 말인가.’
그 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말 좀 합시다” “내가 먼저 말해도 되겠습니까” 하며 말했습니다. 해보니 잘하더라고요. 자칫 내가 말을 못하는 사람인 줄 알고 죽을 뻔했습니다. 하지만 운 좋게도 그걸 발견할 수 있는 세 번의 계기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공부는 그것을 찾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학교는 그것을 찾을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누구나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학교와 사회는 그런 다양한 기회를 주는 데 인색하거나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당장 잘하지 못해도 언젠가 잘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실패하고 실수했을 때 재도전과 패자부활의 기회를 줘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시도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시도해보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알 길이 없습니다.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는 실패와 시행착오 끝에 찾아지는 게 틀림없습니다.
잘하는 것을 찾았다고 끝이 아닙니다. 시작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에 합격한 친구는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재능 하나를 발견한 것입니다. 하지만 서울대에 입학한 순간, 자신과 비슷한 재능을 가진 친구들과 새로운 경쟁을 해야 하지요. 그러므로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았으면 준비하고 연습하고 복기해야 합니다.
나는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는 경우, 가서 무슨 얘기를 할까 준비합니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검색이라도 해봅니다. 그리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머릿속으로 말해봅니다. 연습해보는 것이죠. 친구와 헤어져 오는 길에 한 말을 복기합니다. ‘내가 무슨 얘기 했지? 이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았겠다. 아, 이 말 깜빡했네. 다음에 써먹어야지.’ 이런 과정을 통해 내 말이 발전합니다.
이제 오래 삽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러려는 의욕과 노력만 있다면 말입니다. 내가 모르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그 짜릿하고 달콤한 탐험을 지금 당장 시작해보기 바랍니다.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사람은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공부는 그것을 찾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학교는 그것을 찾을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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