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만큼 먼 거리를 꾸준히 달릴 수 있는 동물은 드물다고 한다. 빠르지도 힘이 세지도 않은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꾸준함은 양을 늘리고, 늘어난 양은 질을 만들어낸다. 계속하는 사람이 무서운 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원국이는 진득하지 못해서 탈이야.” 돌아가신 할머니가 늘 하신 말씀이다. 나는 끈기가 없었다. 쉬 싫증을 내고 쉽게 포기했다. 태권도, 주산, 웅변… 어느 것 하나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술은 백번도 넘게 끊었다. 그런 내가 끈질겨졌다. 8년 넘게 글쓰기 강의를 꾸준히 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 목적이 분명하다. 밥 먹고 사는 일이다. 월급 받으며 직장 다닐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직장은 여기저기 기웃거릴 수 있지만 지금은 외통이다. 이 길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
재미도 있다. 나는 본시 남 앞에서 말하는 걸 좋아했나 보다. 쉰살 될 때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 강의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다. 오래 살다 보니 공부가 재밌어지는 날이 오기도 한다.
재밌는 일도 길이 들고 몸에 배면 시들해질 수 있다. 이골이 나고 권태로울 수 있다. 나는 그런 염증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았다. 바로 성장이다. 강의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말을 보태는 걸 목표로 한다. 보태지는 내용만큼 하루하루 성장한다.
나름 의미도 있다. 가장 큰 의미는 내가 일의 주인이라는 점이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끈질기게 해나가면 시간이 지날수록 내 이름이 더 알려지고 강의 실력도 나아질 것이다. 또 그런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거나 폐를 끼치지도 않는다.
물론 고비도 있었다. 강의 도중 수강생 중 한 분이 내 말에 불쾌감을 드러낸 적도 있었고, 평가가 형편없이 나와 다음 강의가 두렵고 걱정스러운 때도 있었다. 2020년 코로나가 엄습해 반년 정도 손 놓고 있을 때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참고 견디고 버텼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이전 것을 모두 지우고 마음을 초기상태로 만들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슬럼프를 극복했다.
슬럼프는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끈기 있게 못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다. 찾아온 뒤에 대처하는 것보다는 사전에 예방하는 게 바람직하다. 부진과 침체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남에게 완벽하게 보이려는 욕심뿐 아니라 스스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니, 벗어날 순 없어도 기대수준을 낮춰야 한다. 보폭을 좁혀야 한다. 그래야 포기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다. 지치지 않고 멀리 갈 수 있다.
곁에 자신을 격려하고 성원하는 사람의 존재 여부도 중요하다. 그런 응원군이 먼 길 가는 자신을 지치지 않게 한다. 그 사람이 멘토일 수도, 롤모델일 수도, 동반자나 동지일 수도 있다. 특히 나같이 의지박약한 사람에게는 필수적이다.
목표가 너무 원대(遠大)해서도 지속하기 힘들다. 장기적인 목표는 단기로 세분화해야 한다. 큰 목표 역시 작게 나눠야 한다. 그래야 수시로 작은 성취를 맛볼 수 있다. 그때그때 성과를 확인할 수 있어야 그 일에 대한 확신 수준이 높아지고 또박또박 나아갈 수 있는 낙관과 긍정의 힘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계량화할 필요가 있다. 다이어트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매일 체중을 재고 수치를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과거 어느 시점보다 몸무게가 줄어 있으면 체중 관리에 보람을 느끼며 더욱 정진하게 되고, 늘어 있으면 경각심을 갖고 감량을 위해 힘쓰게 된다.
방법은 언제든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계획은 세우되 그것에 얽매이거나 연연하지 않는다. 유연하게 대응한다. 모든 건 계획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늘 작심삼일(作心三日)한다. 사흘에 한 번씩 스스로 평가하고 피드백하면서 계획을 수정한다.
의지만으로는 지속할 수 없다.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당장 성과를 내야 하는 일, 빠른 결과를 요구하는 분위기에서는 끈기를 발휘하기 어렵다. 스스로도 과하게 열정에 불타오르는 걸 경계해야 한다. 때로 차분하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열정은 식게 마련이다. 잠깐 열중할 순 있어도 오랫동안 집중하긴 어렵다. 연애할 때처럼 펄펄 끓어선 오래가지 못한다. 결혼생활같이 뜨뜻미지근한 게 좋다. 야단스럽지 않게 데면데면 가야 한다. 그래서 끈기는 ‘은근’이란 말과 쌍으로 붙어 다니지 않나 싶다. 아울러 은근과 끈기야말로 학창시절에 키워야 할 자질 아닐까.
인류만큼 먼 거리를 꾸준히 달릴 수 있는 동물은 드물다고 한다. 빠르지도 힘이 세지도 않은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실제로 내가 무언가를 꾸준히 해보니 얻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그 일에 정통해진다. 연륜도 쌓인다. 꾸준함은 양을 늘리고, 늘어난 양은 질을 만들어낸다. 또 오래 하다 보면 우연히 얻어걸리는 행운도 맛보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 분야 사람들과 교분이 쌓이고 네트워크도 만들어진다. 계속하는 사람이 무서운 법이다.
강원국 |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