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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반항으로 드러내는 자기 빛깔

등록 2020-10-16 19:30수정 2020-10-17 07:06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 김선희의 학교 공감일기

⑰ 편견 속 가려진 아이의 마음

지난 글에 언급된 아이, 장원(가명)이 이야기를 한번 더 하고 싶다. 장원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수업시간에 교사의 지적을 받는 일이 잦다 보니 ‘나만 미움을 받는다’는 억울한 심정을 호소하곤 했다. 종종 교사의 지도에 격하게 반항하여 소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선생님, 지금 글쓰기 수업 지도 중인데요, 장원이가 의자를 거칠게 다루는 반항적인 행동을 해서 너무 당황했어요. 선도위원회에 회부하겠어요. 아이들도 무척 놀랐으니 수업 마칠 때까지 담임 선생님이 데리고 계셔주길 바라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내 자리를 찾아온 교과 교사의 태도는 단호했다. 뒤에서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불평하는 장원이가 보였다. 교사가 교실로 돌아간 뒤로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장원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바닥에 뜨거운 김을 뿜듯 입 모양 욕을 뱉어내고 있었다.

“장원아, 무척 화가 난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까 그 선생님이 자기가 잘못해놓고 오히려 저를 망신 줬어요.” “저런… 선생님이 어떤 잘못을 하신 거야?” “지난번 쌤은 글쓰기나 책 읽기 같은 조용히 각자 활동하는 시간에는 화장실 사용이 급하면 문소리 안 나게 조용히 다녀와도 좋다고 하셨거든요. 오늘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서 나가는데 갑자기 아까 그 쌤이 ‘어디 가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화장실 간다’고 했더니, ‘왜 말도 없이 마음대로 교실 밖으로 나가냐’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했더니 ‘말도 안 된다’며 ‘어디서 그렇게 배웠냐’고 그러잖아요. 뭔가 굉장히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도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다시 제자리로 가서 앉았는데, ‘너 이리 나와!’ 하면서 애들 다 보는 데서 저를 죄인 취급 했어요. 화가 나서 안 나가고 그냥 앉아 있었더니 더 크게 불렀어요. 그래서 의자를 거칠게 밀치고 교탁 앞으로 나갔더니 저를 이리로 끌고 왔어요.”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아까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는데, 어떤 점이 그랬어?” “저번 선생님이 지도하신 대로 따른 것뿐인데, 제가 왜 그랬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애들 다 보는 데서 비난하셨잖아요.” “그래, 억울한 마음이 들었겠다. 그럼 ‘지난번 선생님의 지도대로 한 것뿐’이라고 말하고 싶었겠네.” “네, 그렇지만 선생님이 ‘말도 안 된다’고 말하는 걸 들으니 지난번 선생님한테 의리 없이 구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다른 말을 꾸며내는 것도 안 내켜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예요.” “아, 그런 마음이었구나. 갑자기 교과 선생님이 바뀌는 바람에 지도 방침이 달라지니 혼란스러운 마음도 들었겠네.” “네, 맞아요. 처음 보는 낯선 쌤한테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말할 수 있겠어요. 괜히 솔직히 말했다간 다른 선생님과 비교한다고 오해받을 수도 있잖아요.” “그랬겠다. 이렇게 자세히 말하고 나니 지금 마음은 어때?” “화가 많이 누그러져요.” “의자를 세게 밀친 일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이 들어?” “자존심이 상해서 저도 모르게 그랬던 건데, 아이들까지 놀라는 표정을 보고 나니 오히려 더 부끄럽게 느껴져요.”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게 될 것 같아?” “쌤께 가까이 다가가서 제 사정을 조용히 말하겠어요.”

대화 나눈 내용을 교과 교사에게 전하니 아이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며 대화를 잘 나눠보겠다고 했다. 장원이는 그 이후 다른 시간에도 비슷한 일을 몇 번 더 겪었지만 점차 스스로의 마음을 표현하는 능력이 향상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거부감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상대 교사에게 자기 마음을 명확하게 표현하여 원만하게 해결하곤 했다.

덮어놓고 평가하고 판단하여 일방적으로 다스리려 했다면 볼 수 없었던 생생한 마음의 역동을 알면 알수록 아이들은 저마다 더 매력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표정이나 행동으로 무언가 거부감을 드러낼 때, 아이가 지닌 독특한 색채를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기회임을 잊지 말고 아이 마음을 끝까지 묻고 들어볼 일이다.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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