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부터 ‘음악은 잘하는 사람이 아닌 즐기는 사람의 것이다’를 내 수업의 좌우명으로 정했다. 그에 따라 자기 주도적으로 저마다의 형편과 수준에 맞는 연주 능력 향상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나의 연주 레퍼토리 만들기’의 마무리 단계였다. 자신의 실력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배우기 전과 후를 비교하여 ‘내가 지금 무엇을 해냈는지’ 의미 지음으로써 발전의 원동력을 키우는 수업이다. 각자의 계획에 따라 연습한 결과를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악곡 소개와 함께 공개하고 그에 따른 교사의 질문에 구술로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자신의 연주 영상을 소개한 지금 마음이 어때요?”, “이번 활동을 통해 향상된 점이 있다면?”, “가장 만족한 점은?” 등의 질문에 많은 아이가 내 기대에 부응하며 긍정적인 소회를 밝혔다. “다른 사람에 비해 시시한 곡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친구들이 경청하고 응원해주니 뿌듯했어요.”, “직접 자료를 구하고 활용해서 처음으로 리코더의 변화음 연주법을 익히니 성취감을 느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학원에서 배웠던 피아노 연주곡을 다시 쳐보니 감각이 사라져서 실망했다가 차차 되찾아 기뻤어요. 앞으로도 이번처럼 계획을 세워 꾸준히 연주하고 싶어요.”, “스스로 계획하고 연습해도 실력이 늘 수 있다는 경험을 통해 악기 연주는 물론, 제 삶의 다양한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어요.” 나도 아이들의 소감에 설레 가슴이 뛰는 내 마음을 전했다.
한편, 일부는 발표를 망설였다. 연주 실력뿐 아니라 소감을 표현하는 능력까지 내심 비교하며 위축된 것이다. 뜻하지 못한 상황으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될 즈음, 신영(가명)이 차례가 돌아왔다. “저는 재능이 없어서 쉬운 곡을 찾아 리코더로 ‘나비야’를 연주했어요.” 연주 영상을 보며 화상회의 화면에 비친 일부 아이의 입가에 웃음기가 번졌다. “애썼네요. 혼자 연습하느라 힘들지 않았나요?”, “아니요…. 다섯 음뿐이라 오른손만 쓰니 쉬웠어요.”, “아, 연습 과정에서 악곡의 특성도 자연스럽게 발견했군요!” 점차 웃음기가 사라진 아이들의 관심 어린 표정이 보였다. “쉽다고 느낀 건 언제쯤이죠?”, “첫번째 시간에 이미 연주가 잘됐어요.”, “그렇다면 남은 기간 동안 좀 더 어려운 곡에 도전해보고 싶지 않았나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들의 눈빛이 더욱 집중됐다.
“도전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요?”, “…재미가 없어서요.”, “혹시 너무 쉬운 곡이라 재미를 못 느낀 건 아닐까요?”, “사실 전… 어려서부터 음악이 싫었어요. 음악은 역시 제 취향이 아닌 것 같아요.” 이쯤 되니 여러 아이가 놀라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아, 그런 자각이 들었군요. 그럼에도 발표에 참여한 이유가 있을까요?”, “해야 하니까요.”, “음, 좋아하지 않는데도 마음이 허락하는 선을 정해 주어진 기간 안에 동참했군요.”, “네, 맞아요.”,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드네요. 게다가 내 은근한 권유에 대해 거부감을 솔직히 말해줘서 교사로서 깊이 신뢰 받았다고 느꼈어요. 덕분에 나도 ‘좋아하지 않아도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수업’에 대한 성장 목표를 갖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지켜보던 아이들의 어깨가 어느새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발표를 보류했던 아이들이 하나둘 참여하며 한층 흥겨운 수업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수업 과정에서 일어난 마음을 그대로 말하고 전적으로 격려받는 신영이를 지켜보며 모든 아이가 자기를 드러내는 용기를 배운 것이다. 누군가를 이겨서 얻은 용기는 불안의 또다른 얼굴일 뿐이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용기만이 평화롭게 지속가능한 진짜 용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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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 교사
※‘김선희의 학교 공감일기’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님과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