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11일 서울의 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협업 토론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칼럼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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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재밌어지는 안내서입니다. <대통령의 글쓰기> 외 ‘글쓰기’ 시리즈 작가로 유명한 강원국 선생님이 전하고 싶은 공부 방법이 있답니다.
꼭 학교 공부만 얘기하는 건 아니겠지요. 세상을 들여다보는 눈을 키우면 자연히 학교 공부도 재밌어지지 않을까요. 공부하고 싶은 의욕도 팍팍 솟지 않을까요?
‘지금 그 방법이 통하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강원국 샘의 연륜이 묻어나는 아날로그 방식이 때론 중하위권을 벗어나려는 학생들에게 확실한 자기주도적 공부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칼럼을 준비했습니다.
나는 경쟁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대학에 갔으니 학창 시절 경쟁을 잘한 것입니다. 재수 없게 들려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이니까요. 직장 생활도 기업 홍보실에서 글 쓰는 일을 시작해 마침내 대통령의 글까지 썼으니 경쟁에서 성공한 셈이지요. 한마디로 출세했습니다. 출세라는 게 그런 것 아닌가요? 경쟁을 잘했다는 것, 남을 이겨먹었다는 것.
우리 국민은 경쟁을 잘합니다. 지고는 못 배기지요. 대통령 모시고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았습니다. 나가 보니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우리같이 아등바등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경쟁심은 세계 최곱니다. 교육열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경쟁심입니다. 나쁜 게 아니지요. 잘하고 싶다는 의욕이고, 잘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입니다. 성장의 동력이고,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이유입니다.
경쟁은 아무도 행복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우열을 가리는 게 경쟁인데, 이기는 사람이 있으려면 지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요. 내가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으려면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요. 그것이 경쟁 아닌가요? 이처럼 경쟁은 남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듭니다.
불행은 비교에서 시작하더라고요.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행복하지 않냐고요? 천만에요. 제가 전교 1등을 해봤잖아요. 담임선생님이 “이번 시험은 전교 1등이 우리 반에서 나왔다. 다 같이 박수!” 그날 하루만 행복합니다. 다음날부터 1등을 뺏길까 봐 불안하지요. 1등이 그러한데, 다른 친구들은 오죽할까요. 1등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기꺼이 박수 치는 친구일수록 다음 시험 결과도 신통치 않습니다. 여기에 경쟁의 비극과 불행이 있습니다.
공부를 왜 하나요? 불행해지려고요? 적어도 나의 학창 시절 공부는 그랬습니다. 공부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험은 그 자체가 경쟁입니다. 공부의 종착점은 시험이고, 시험은 누구도 행복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불행을 맛보러 가는 공부를 누가 좋아할까요. 그런 공부를 어느 누가 즐겁게 할 수 있을까요.
아, 이럴 순 있겠네요. ‘당장은 불행하더라도 이걸 참고 이겨내면 장차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 하는 게 공부다’라고.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우선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현재의 불행을 감수하는 게 맞을까요? 맞을 수 있지요. 그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면 장차 행복해지는 건 맞나요? 혹시 부모만 행복해지는 건 아닌가요? 공부를 잘하면 좋은 직장에 갈 확률이 높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런데 좋은 직장일수록 어떤가요. 경쟁이 치열합니다. 여기서 살아남는 사람은 소수이지요. 그런 사람 가운데 임원이나 고위 공직자가 탄생합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갈망하던 일류 직장에 들어가 연수를 마칠 때까지만 행복합니다. 그다음부턴 ‘언제 여기를 떠날까’ 궁리합니다. 각박한 경쟁에서 해방되는 걸 꿈꿉니다.
경쟁에서 협력으로 물꼬를 틀어야 합니다. 친구와의 경쟁이 아니라 친구를 돕기 위해 하는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첫째, 공부를 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교과서, 참고서를 읽습니다.
둘째, 수업을 한 시간 들었으면 쉬는 시간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3초 정도 생각해봅니다. ‘조금 전 선생님이 무슨 얘기하셨지?’ 이렇게 말이죠. 그러면 뭐라도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시간 정도 읽었으면 잠시 멈추고 방금 읽은 내용이 뭐였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셋째, 떠오른 것을 메모합니다.
넷째, 친구들과 모입니다. 친한 친구 서넛 정도가 좋을 것입니다. 나보다 성적이 좋아도 기꺼이 축하해줄 수 있는 친구이면 좋겠지요. 시험을 앞두고서도 좋고, 평소 정기적으로 모여도 좋습니다. 친구 집도 좋고 카페 공부방도 상관없습니다. 각자 메모한 것을 들고 만납니다. 그리고 친구를 위해 내가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합니다. 그렇게 3명이 모여 말하면 3인분 공부한 게 됩니다. 내가 놓친 걸 친구에게 들을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말하면서 더 확실히 알게 됩니다. 말한 것, 들은 건 시험 볼 때 모두 생각납니다. 선생님에게 들은 건 까먹어도 친구에게 들은 내용은 잊히지 않습니다. 그런 결과로 시험을 잘 치게 되면 친구들끼리 모여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어제 네가 말한 게 정말 시험에 나왔더라. 말해줘서 고마워. 너희들 덕분에 시험 잘 봤어. 우리 다음 시험도 이렇게 준비하자. 나도 더 많이 공부해 올게.”
학교 수업 시간이 이런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아는 것을 일상적으로 친구들과 나누고, 그러기 위해 준비해오는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즐거운 공부가 됩니다. 나만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남을 위해 하는 일은 즐겁습니다. 친구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돕기 위해 하는 공부는 재밌습니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함께하는 것이 지겹지 않습니다.
경쟁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경쟁을 잘해서 경쟁에서 이기는 시대가 아닙니다. 이제는 협력과 연대를 통해 경쟁에서 앞서나가야 합니다. 학급이나 학년에서 경쟁하는 공부가 아니라 학급 친구들끼리 협력해서 다른 학급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학교 친구들끼리 연대해서 다른 학교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우리나라 학생들끼리 협력해서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앞서나가야 하는 시대입니다.
나는 거의 매일 강의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공부합니다. 이 공부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게 아닙니다. 공유하기 위한 공부입니다. 나이 예순을 눈앞에 둔 지금 공부가 재미있는 이유입니다. 이런 공부를 학창 시절에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보는 요즘입니다.
강원국 ㅣ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