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중학교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송정중학교 폐지 반대 및 교육청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학교는 이 마을 모두의 자원이에요. 어떻게 ‘진보교육감’이 9년 동안 공들여 일궈온 혁신학교를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나요?”
지난 27일 오전 찾은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송정중학교 내 ‘자기주도학습관’은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학생, 학부모들로 붐벼, 마을 ‘사랑방’을 연상케 했다. 옛 유도부 숙소를 개조한 이 곳은, 일주일에 두 번씩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공간이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출출하지 않게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간식을 차려주러 온다. 후배들의 공부를 봐주기 위해 졸업생이 ‘교육봉사’차 찾아오는 것도 전통처럼 굳어졌다. 고등학생인 김세린(가명)양은 “혁신학교 수업만 해본 후배들에게, 고등학교 수업을 경험해본 선배의 조언이 쏠쏠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송정중이 지난 2010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뒤로 일궈온 성과에 대해 깊은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송정중은 올해 초 서울 385개 중학교 가운데 4개밖에 없는 ‘혁신미래자치학교’로도 지정된 바 있다. “우리 학교는 아이들을 성적으로 줄세우지 않고 모든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키워요.” “학부모들도 학교를 근거지로 삼아 지역 봉사 등의 활동을 해왔어요.” “온 마을이 모든 아이를 함께 키우는 거죠.”
그러나 송정중은 올해 안에 폐교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근처 아파트 단지인 마곡지구 안에 새로운 중학교(마곡2중)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학생 수가 줄어들 공항동에 있는 송정중을 폐교한다는 것이 교육 당국의 방침이기 때문이다. 신도시에 학교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구도심의 오래된 학교를 없애는 셈이다. 여기에 학교 신설을 요구하는 신도시 학부모들 일부가 “새로 짓는 학교는 절대로 송정중 같은 혁신학교가 되어선 안된다”고 주장하며 지역 갈등까지 불거졌다. 송정중 폐교는 학령 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교육 당국의 정책, 신도시와 구도심의 교육환경 격차, 혁신학교를 둘러싼 찬반 논쟁 등 오늘날 우리 사회의 온갖 교육 문제가 녹아들어 있는 만화경이다.
지난 27일 오전 송정중 자기주도학습관 안에서 이 학교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최원형 기자
■ 택지개발지구 학교 신설 위해 구도심 학교를 페교 발단은 2014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서양천교육지원청(지원청)에 “새로 입주한 택지개발지구인 마곡지구에 중학교를 신설해달라”는 민원이 제기됐다. 지원청은 곧바로 송정중과 공진중을 통폐합하는 조건으로 마곡2중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냈다. 학령 인구 감소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학교 신설 계획에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을 조건으로 붙이는 등 이른바 ‘학교총량제’가 강하게 적용되던 시기였다. 사실상 마곡2중을 신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고, 사업 허가와 재정 확보를 위해 송정중과 공진중이 ‘희생양’으로 선택된 셈이다. 당시 교육청이 작성한 자료들을 보면, “마곡지구 입주민의 중학교 배정 관련 민원 해소”를 사업추진의 주된 배경으로 꼽고 있다. 2014년까지만 해도, 5년 단위인 교육청 중기계획에 마곡2중 신설과 송정중, 공진중 폐교 방침은 없었다.
송정중과 공진중이 신설 학교를 위한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은, 이후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중투심) 심사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마곡2중 신설은 100억원이 넘는 투자라서 중투심을 통과해야 했는데, 2015년 9월 중투심은 “인근학교 1개교를 추가 통합”하라며 ‘재검토’ 결과를 냈다. 교육청은 부랴부랴 경서중학교를 통폐합 대상으로 끌어들여 석 달만에 다시 심사를 올렸으나, 또다시 ‘재검토’ 결과를 받았다. 폐교에 대한 경서중의 반발이 극심하자, 학교 급이 다른 염강초등학교가 경서중을 대신하는 ‘희생양’으로 선택됐다. 결국 마곡2중 신설 계획은 2016년 12월 “개교시까지 공진중, 송정중 통폐합, 염강초 통폐합”을 조건으로 중투심을 통과했다. 마곡2중은 송정중에서 불과 1㎞ 떨어져 있다. 통폐합 대상 학교를 물색하고 채워넣고 바꿔넣는 이 일련의 과정은, ‘희생양’을 고르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 이미 모든 걸 정해놓고… 폐교 임박하여 의견수렴 학교 신설 및 통폐합 계획은 중투심 통과로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에 선행되었어야 할 ‘의견 수렴’ 과정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학교 통폐합을 추진하려면 세부추진계획을 수립하기 이전에 사전의견 수렴, 설명회 개최, 학부모 설문조사 실시 등을 거친 뒤 대상 학교를 선정해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원청은 아무런 의견 수렴 없이 공진중과 송정중을 통폐합 대상으로 골랐다. 교육청은 이후 2016년 6월에 송정중을 상대로 학부모 설명회를 열었다고 했지만, 당시 송정중 학부모회장을 지낸 이기연씨는 “설명회를 연 적 없다.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말했다.
되레 송정중 학부모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지원청에 문의를 할 때마다 “확정된 바 없다”거나 “송정중이 새로운 학교로 옮겨가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구도심 학교가 새로운 택지개발지구로 옮겨 새로 개교하는 것은 ‘신설대체이전’이라고 하는데, 이는 폐교를 전제로 하는 ‘통폐합’과는 다르다. 송정중의 경우 처음부터 ‘신설대체이전’이 아닌 ‘통폐합’의 대상이었는데도, 정작 학부모들은 몇 년 동안이나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것이다. 올해 5월에야 ‘통폐합’ 설명회 때에야 ‘폐교’ 방침이 알려졌고, ‘통폐합추진협의체’가 구성되어 최근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대해 송정중 교사와 학부모들은 “이미 모든 걸 다 결정해놓고 절차상의 근거만 남기려 한다”고 비판했다.
서울시교육청 스스로 이런 상황을 고백한 적도 있다. 2017년 11월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에 출석한 당시 서울시교육청 담당 과장은 “현재 지역주민의 반대가 조금 심해서 일단 부대조건(통폐합)은 개교시점에 완성을 하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올해 6월에야 열린 송정중학교 통폐합 관련 학부모 설명회 안내장.
■ ‘밀실행정’에 지역 갈등까지 심화 이렇게 교육 당국이 밀실에서 송정중 폐교를 추진하는 사이, 구도심인 공항동과 신도시인 마곡지구 사이에는 지역 갈등이 심화됐다. 애초 송정중에는 공항동에 위치한 송정초 졸업생들이 주로 배정을 받았는데, 최근 몇 년 전부터 마곡지구에 있는 공진초 출신 졸업생들이 많이 배정됐다. 현재 전교생 비율을 보면, 송정초 출신과 공진초 출신의 비율이 4 대 6 정도다.
사는 지역에 따라 원하는 학교가 달랐다. 공항동 학부모들은 대체로 혁신학교에 만족하고, 그 이유로 송정중 폐교에 반대한다. 이들에게 송정중의 폐교는 단지 하나의 물리적인 학교가 없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들은 “우리 모두가 일궈온, 학교 개개인을 존중하고 스스로 길을 찾게 해주는 교육과 문화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송정중 학부모회장인 노수진씨는 “신도시에 학교를 만들기 위해 구도심의 멀쩡한 학교를 없앤다는 발상 자체가 폭력적이다. 더군다나 혁신학교의 가치를 주창해온 교육감이라면, 지금이라도 송정중 폐교를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반면 마곡지구 학부모들은 대체로 혁신학교를 반대하며, 그 이유로 학교 신설을 원한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의 방침대로라면, 송정중 폐교와 관계없이 신설 마곡2중은 ‘예비혁신학교’로 지정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마곡지구 학부모들은 “예비혁신학교 지정은 절대로 안된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마곡2중일반학교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마곡지구 학부모 배정화씨는 “혁신학교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안 시킨다. 우리는 혁신학교가 아닌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학교를 원할 뿐이다. 신설 마곡2중은 꼭 일반고로 개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설적이게도, 두 집단이 모두 만족할 해법이 하나 있다. 송정중을 폐교하지 않는 것이다. ‘분리 교육’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론 그래야 각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 서로의 선택을 존중할 수도 있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송정중을 폐교하지 않고 마곡2중을 신설해도, 지역 인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두 학교 모두 적정규모로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 만족할 수 없는 쪽은 교육청 뿐이다. 모든 것을 백지화하고, 학교 통폐합을 조건으로 받은 학교 신설 비용과 인센티브 등을 모두 반납해야 한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중투심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다.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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