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한유총의 ‘개학 연기’ 투쟁 관련 현장준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경기도교육청 산하 용인교육지원청 상황실을 찾은 유은혜 교육부 장관(오른쪽)이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용인 지역은 ‘개학 연기’ 의사를 밝힌 사립유치원들이 많아, 교육 당국으로부터 ‘긴급돌봄 최대위기관리지역’으로 꼽혔다. 교육부 제공
사립유치원들의 ‘개학 연기’ 투쟁이 예고됐던 4일 오전 8시40분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ㄱ유치원 앞에는 유치원생들을 태운 통학 버스와 직접 아이들을 데려다주러 온 학부모들의 자가용들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교사들은 현관에서 들어오는 아이들을 맞느라 바빴다. 이곳은 경기도교육청이 이날 오전 8시 기준으로 집계한 명단에도 ‘개학 연기’ 방침인 유치원으로 이름이 올라 있는 유치원이었지만, 등원 풍경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현관에서 만난 교사들에게 “방침을 철회한 것이냐” 물어보니, 대신 원장이 나타나 “오늘부터 정상 개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연휴 내 ‘개학 연기’ 방침이었다가 어저께 이를 바꾸고 학부모들에게 통보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뜻을 바꾸게 된 배경을 물어봤으나 원장은 말을 아꼈다.
주거단지가 밀집한 경기도 용인은 사립유치원들이 몰려 있는 데다가, 평소 ‘개학 연기’ 투쟁을 주도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입김이 강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3일 오후 10시에 집계한 기준으로 ‘개학 연기’한다고 한 유치원이 32곳이나 돼, 교육 당국은 이곳을 ‘긴급돌봄 최대위기관리지역’으로 꼽기도 했다. 교육청 집계에서 ‘무응답’한 유치원도 많아, 실제로는 집계보다 더 많은 유치원이 개학을 연기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이날 아침 몇몇 용인 지역 사립유치원들을 돌아보니, 우려했던 수준의 ‘유치원 대란’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전 9시께, 학부모들 사이에 용인시 수지구에서 시설이 좋은 유치원으로 잘 알려진 ㄴ유치원에는 이미 대부분의 원생들이 등원을 한 상태였다. 이곳은 3일 오전까지만 해도 ‘개학 연기’ 방침을 밝히고 있다가, 그날 오후 들어 입장을 철회해 교육청 집계 명단에서 빠진 곳이다. 교사들은 “원래 개학일은 내일이라 오늘은 종일반 돌봄 제공만 한다”고 했다. 앞으로의 일정을 물어보니,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교육과정을 시작한다. ‘개학 연기’ 방침을 완전히 철회한 것”이라고 밝혔다.
ㄴ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주러 온 학부모 이아무개(38)씨는 “연휴 내내 ‘개학 연기’ 때문에 잠을 못 잘 정도였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맞벌이 부부인 이씨 부부는 지난 28일 ㄴ유치원으로부터 ‘개학 무기한 연기’ 방침을 통보받은 뒤로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하는지 백방으로 알아봤으나 뾰족한 수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교육 당국이 안내한 ‘긴급돌봄서비스’ 신청도 하려 했지만, “100번을 넘게 전화해도 통화가 연결되지 않아 그마저도 실패했다”며 이씨는 불만을 터뜨렸다. “다행히 어제 오후에 유치원에서 ‘개학 연기’를 철회한다고 연락을 줘서 간신히 한숨 돌렸죠.” 이번 ‘개학 연기’ 사태에 대해 이씨는 “학부모와 아이들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레 이렇게 피해를 봐야 하나. 사립유치원들은 정당하고 깨끗하게 유치원 운영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정부 역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립유치원들의 ‘개학 연기’ 투쟁을 하루 앞둔 지난 3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청 앞에서 유치원 ‘개학 연기’에 반대하는 수지지역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집회를 마친 뒤 행진하고 있다. 용인/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개학 연기’ 방침을 고수해온 사립유치원이 어떻게 대처할 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이날 오전 8시30분께 찾은 용인시 수지구에 위치한 ㄷ유치원에서는 교사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개학 연기’ 방침을 철회했는지 여부를 묻자, 한 교사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 우리끼리 회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장은 부재중이라고 했다. 오전 10시께 다시 찾았을 때에도, 원생들은 없이 교사들의 회의만 계속되고 있었다. 이 유치원은 경기도교육청이 4일 오전 8시 기준으로 집계한 현황에도 ‘개학 연기’ 방침인 곳으로 이름이 올라와 있다. 이 유치원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ㄹ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서는 “우리 개학날은 내일이다. 다만 여지껏 ‘긴급돌봄서비스’로 우리 원에 배정된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고 밝혔다.
교육부에서 “지자체와 공동 대응하겠다”고 밝힌대로, 이날 경기도교육청과 용인시청 직원들은 각자 조를 짜서 모든 관내 사립유치원들을 방문하며 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ㄴ유치원 앞에서 만난 경기도교육청 직원은 “유치원을 방문해서, 정상적으로 개원했는지, 오늘이 개학날이 아니라면 돌봄 제공은 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며칠 동안 비상근무체제로 일하고 있다는 그는 “좀 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봐야겠지만, 아직까지는 우려했던 ‘유치원 대란’까지는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이날 오전 유은혜 사회부총리는 경기 용인교육지원청 상황실을 방문해, 사립유치원과 한유총 관계자들에게 “지금이라도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불법적인 개학 연기를 즉각 철회해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유 부총리는 “다행스러운 것은 개학 연기 유치원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고 자체돌봄을 한다는 유치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적으로 ‘개학 연기’ 방침을 고수하는 유치원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오늘 교육 당국이 전수조사한 결과를 집계해 밝힐 예정이다.
용인/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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